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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 채상병 특검 맹공… 정국 주도권 쥐기
    민주, 채상병 특검 맹공… 정국 주도권 쥐기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범야권 압승을 이끈 더불어민주당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특검법의 5월 임시회 처리를 공식화하면서 ‘특검 정국’의 포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와 ‘수용’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민주당 소속 의원 116명은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자”며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다. 이어 김진표 국회의장을 향해 “채 상병 특검법의 본회의 통과 여부는 21대 국회가 할 일을 하는 국회였는가, 아닌가의 기준이 될 것”이라며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시켜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발의한 채 상병 특검법과 별개로 올해 3월엔 주호주 대사에 임명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도피 출국’ 의혹에 대한 특검법도 발의했는데, 향후 여야 협상 과정에서 두 특검법이 병합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국정조사 요구서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된 상태로, 특검에 대한 부담을 느낀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가 국정조사를 먼저 시행하는 방안을 요청할 수도 있다.대통령실은 ‘채 상병 사건 처리와 이 전 장관 출국 과정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야당 주도로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을 전제로 대응 시나리오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의힘 의원들의 ‘찬성표 이탈’로 재표결에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정권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우려가 있다.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표결에서 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벌써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찬성 목소리가 나오는 국민의힘(114석)에서 14명이 이탈하면 거부권이 무력화된다.하지만 윤 대통령으로서는 특검법을 전격 수용하더라도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완전히 뺏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총선 참패로 국정 동력 약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 대장동 50억 의혹 클럽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의 수사 대상은 지난해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채 상병의 사망 경위와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사령부 등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방해했는지 여부다. 야권은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승인한 이 전 장관이 하루 만에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지휘 책임자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한 과정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된 이 전 장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입건해 수사 중인 가운데 ‘이 전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 대통령실 내선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나윤석·서종민 기
    “연두색 번호판이 싫어”…지난달 수입 법인차 비중 첫 30% 밑돌아
    “연두색 번호판이 싫어”…지난달 수입 법인차 비중 첫 30% 밑돌아 법인 전용 ‘연두색’ 번호판이 도입되면서 수입 법인차 등록 대수 감소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번호판 부착 대상인 8000만 원 이상의 고가 모델을 주로 보유한 럭셔리카 브랜드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수입차 법인구매 비중이 처음으로 30% 밑으로 떨어졌다.15일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달 8000만 원 이상의 수입 법인차 등록 대수는 3868대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5636대 대비 1768대(31.4%) 감소한 수치다. 협회에서는 올해 1월부터 취득가액 8000만 원 이상 법인 승용차는 연두색 번호판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한 제도 때문에 등록 대수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세금 혜택을 노리고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차로 샀던 이들이, 연두색 번호판에 대한 거부감으로 구매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8000만 원 이상 수입 법인차 등록 대수는 올 2월에도 3551대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달(4793대) 대비 1242대(25.9%) 줄은 바 있다. 연두색 번호판으로 고가의 법인차 등록 대수가 줄면서 전체 수입차 판매에서 법인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급감했다. 지난달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 대수가 작년 같은 달(2만3840대)보다 6.0% 증가한 2만5263대로 집계된 가운데, 이중 법인차 등록 비중은 28.4%(7179대)로 집계됐다.법인차 등록 비중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달이 처음이라고 협회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모든 차량 가격이 연두색 번호판 부착 대상인 8000만 원 이상에 해당하는 럭셔리카 브랜드 판매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별 법인차 비중은 롤스로이스 87.3%, 벤틀리 76.0%, 포르쉐 61.1% 등이었다.올해 1분기 벤틀리의 등록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7.4% 감소한 38대에 그쳤다. 롤스로이스(35대)와 포르쉐(2286대)도 각각 35.2%, 22.9% 줄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연두색 번호판이 고가 수입차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취득가를 거짓으로 낮춰 신고하는 ‘꼼수 법인차’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노기섭 기
    “보호자로 찾으니 더 먹먹… ‘4·16’ 잊지말자 다짐”
    “보호자로 찾으니 더 먹먹… ‘4·16’ 잊지말자 다짐” 안산=조율·김린아 기자“우리 아이가 세월호와 함께 자라 꼭 10살이 됐거든요. 내 아이가 자라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참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오후 경기 안산시 4·16민주시민교육원 내에 위치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이곳에서 만난 시민 김모(40) 씨는 교실을 둘러보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2014년에 태어난 아들과 함께 추모를 위해 방문했다는 김 씨는 “아이들이 썼던 교실과 작은 책상을 실제로 보니 마치 내 아이인 듯 눈물이 난다”며 “소중한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참사 희생자와 유족, 시민들은 여전히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참사 당시 세월호를 타고 제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을 애도하기 위해 당시 단원고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복원한 곳이다. 2014년 4월에 멈춘 달력과 반마다 정한 급훈과 시간표,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적어둔 게시판 등 교실 내부에는 10년 전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마지막 수업’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교실 앞 화이트보드에 남겨진 “과제 : 꼭 돌아오기” “얘들아 어서 와. 너네 다 지각이다”라는 글과 책상 위에 놓인 아이들의 영정사진만이 아이들의 부재를 실감케 했다.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는 추모객 조승원(28) 씨는 “당시 또래로서 참사를 접했고, 10년이 지나 그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교사가 돼 교실을 방문하니 마음이 먹먹하다”며 “영상으로 세월호 침몰 현장을 보며 어린 나이에 무력감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이제는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곱씹게 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게 지난 10년은 너무도 아픈 시간이었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이창현 학생의 엄마 최순화(58) 씨는 “봄꽃이 필 때마다 아이가 더 생각나는데 트라우마의 신체화 증상으로 온몸이 아프기도 하다”며 “다른 가족들도 4월이면 소화 불량, 불면증 등으로 병원을 더 자주 간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장애진 씨의 아버지 장동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은 “10년 내내 아이는 자신만 혼자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했고, 특히 10주기를 앞두고는 트라우마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는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이기도 한 최 씨는 “개인의 삶이 팍팍하고 힘든 시기임에도 시민분들이 우리를 찾아와 ‘시간이 지났다고 잊은 건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실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며 “앞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뿐만 아니라 세월호 진상 규명, 안전사회 수립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회적 문제가 드러났지만, 이로 인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 다가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며 “제도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당시 사고 수습 지휘부 대부분이 처벌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장 씨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민이 안전과 재난에 대해 한 번 더 곱씹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대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
    “이스라엘, 이란에 긴급대응”… 확전 기로
    “이스라엘, 이란에 긴급대응”… 확전 기로 이란이 13일(현지시간) 미사일과 드론 300여 기로 이스라엘을 보복 공습한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르면 15일 이란에 대한 긴급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응을 만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스라엘의 공격 여부와 시기 및 방식 결정에 시간이 다소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 명의 서방 관리를 인용해 “미국과 서방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이 이르면 월요일(15일) 이란의 공격에 신속히 대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 당국자들은 (이스라엘과 이란) 양국 모두가 승리감을 지닌 채 다시 거리를 둠으로써 확전을 제한할 출구가 생기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비상 회의를 열고 이란의 폭격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내각은 이란에 대한 보복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시기와 규모에 대해선 이견이 있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은 보도했다. 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어떠한 반격도 반대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는 보복 공격 논의를 위해 추후 전시 내각을 다시 소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향후 대응은 방어적인 행동”이라면서도 “우리는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충돌했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이란의 공격이 “국제법상 자위권”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이란 정권은 나치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긴장 고조를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이란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의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오후 11시부터 5시간가량 이스라엘의 군사 시설을 전격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영국·요르단군의 합동 요격으로 미사일과 드론 99%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
    배송된 택배 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 돌려주러 오지 않을까
    배송된 택배 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 돌려주러 오지 않을까 주민센터로 들어서자마자 희수는 그곳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람들로 붐비는 민원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뭔가가 그곳의 활기를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청원 경찰(얼마 전, 공무원과 민원인 간의 다툼 건으로 새로 배치된 사람이었다)이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경계하듯 그녀를 훑어보았다. 아니, 그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뒤따라오는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번호표를 뽑고, 민원인들을 위해 마련된 기다란 의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 다른 조바심을 매만지고 있는 듯한 사람의 눈길은 자신의 용무를 해결해 줄 창구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주민등록, 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라고 적힌 창구를 주시하면서 이따금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그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뒤따라 들어온 푸른색 점퍼를 입은 남자. 청원 경찰이 내내 자신을 주시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창구 안쪽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창구 안으로 곧장 돌진하겠다는 듯, 필경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그는 앉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비어 있던 창구에 직원이 온 건 거의 10여 분 만의 일이었다. 오렌지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는 민원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한참 만에야 업무를 시작했다. 창구 위 화면에 32번이라는 빨간 숫자가 떠오르자 그녀 곁에 앉아 있던 중년 여자가 튀어 오르듯 일어섰다. 이어 33번, 34번, 35번이라는 숫자가 차례로 지나갔다. 희수는 속으로 자신이 요청해야 하는 증명서의 종류를 천천히 되뇌었다. 뭐랄까. 다른 창구 직원들에 비해 약간은 굼뜨게 일을 처리하는 듯한 그 여자의 모습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탓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37번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그녀가 창구로 다가갔을 때, 여자가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 아주 앳되어 보였다. 스물예닐곱, 많아야 서른이 되었을까 싶은 여자의 얼굴에선 또래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등록 초본이랑 가족관계증명서 떼러 왔어요. 그녀가 대답하자 여자가 물었다. 주민등록 초본 한 부, 가족관계증명서 한 부, 맞으세요?네. 맞아요. 과거 주소지가 다 나오는 것으로 드릴까요? 초본 말이에요. 그녀는 그 증명서들을 2주 뒤부터 일하게 될 회사, 성진기획에 보내야 했다. 거의 8개월 만에 새로 구한 그 직장은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였고, 그녀는 자잘한 행정 업무(주차증을 발급하고, 관리비 고지서를 배부하는 등의 일이었다)를 전담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왜 자신의 초본을 확인하려 하는지, 초본에 필수적으로 기재되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녀가 얼른 대답하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여천은 어떤 곳이에요?과거 주소지를 포함하는 게 좋을지 말지를 고민하느라 희수는 여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처음 봤어요. 여천이란 지명은. 그래서 여자가 그렇게 한마디를 더 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어쩐지 긴장한 듯한 여자의 눈빛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민원실 입구, 필경대 앞에 버티고 선 남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슬쩍 남자 쪽을 돌아보곤 대답했다. 그냥 시골이죠, 뭐. 초본에 과거 주소는 포함되지 않게 해주세요. 네. 그런데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저는 일 년에 딱 두 번 고향에 가는데, 갈 때마다 뭐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여천, 여천. 이름이 예쁜 것 같아요. 여자는 마우스를 딸각이면서, 컴퓨터 옆 프린트기를 살펴보면서, 간간이 남자 쪽을 건너다보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여자의 바로 그런 점이 다른 창구 직원에 비해 약간은 굼뜨게 일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았으나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참, 인터넷으로 발급하면 무료예요. 알고 계세요?네. 아는데 귀찮아서 잘 안 하게 되네요. 생각보다 간단한데, 가르쳐 드릴까요? 알고 계시면 진짜 편리해요. 여자는 그녀에게 건네줘야 할 증명서 뭉치를 꼭 쥔 채 계속 말했다. 그리고 한순간, 뒤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일하는 게 느려터졌다느니,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느니, 자신이 내는 세금을 허비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소리치는 남자를 청원 경찰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 순간, 여자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여자의 눈빛에 경계심과 두려움이 스며들고 있었다.희수는 자신이 움켜쥐고 있었던 게 번호표라는 것을 방금 깨달은 사람처럼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다음 순서인 38번(혹은 39번, 40번)이 그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할 때마다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느니 해서 아주 복잡하던데요? 인터넷 발급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그래서였을 것이다.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프로그램은 설치하셔야 해요. 근데 한번 설치해 놓으면 편해요. 예전에 비해 요즘은 많이 간편해졌어요.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고요. 다들 말로는 쉽다고 하지. 막상 해보면 잘 안 되던데요?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벌어졌다고 오해할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컸다. 그것이 그 남자를 얼마간 누그러뜨린 것 같았다. 희수는 창구대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여자가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서 새로운 창이 열리고, 인증창이 뜨고, 이런저런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희수는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상상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 시험 준비할 땐 공무원의 좋은 점만 생각했거든요,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그냥 무서워요, 제가 문제인 걸까요, 아무래도 그만둬야 할까요, 같은 말들. 그러니까 자신이 들을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그런 말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그녀의 발길을 붙들었다. 사십대 후반에 이른 희수의 눈엔 너무나 앳된, 삶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마땅히 품고 있어야 할 여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의 울 것처럼 변했다. 희수는 잠깐씩 남자 쪽을 돌아보며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이따금 보란 듯이 창구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제가 처리해 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오시라고요!그리고 한참 만에 다른 창구 직원이 그 남자를 불렀다. 희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 원망 섞인 남자의 눈빛이 자신을 쏘아보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집요함이랄지, 사나움이랄지, 아무튼 선뜻 반길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으나 희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주민센터를 나간 후에야 비로소 용무가 끝난 사람처럼 증명서 두 부를 받아 느릿느릿 그곳을 나왔다. 희수가 잊고 있던 그날의 일은 며칠 뒤,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어느 저녁에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주문한 것은 라텍스 장갑이었고, 배송비를 제외하면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이었으나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듯 퉁명스럽게 구는 택배 기사와 여러 차례 통화를 하는 동안 기분이 점점 상했다. 경비실과 이웃집에 택배 상자의 행방을 수소문한 뒤, 세 번째로 기사에게 전화를 걸면서 희수는 확실히 책임을 묻겠다고, 보상에 대한 확답을 받겠다고 마음먹었고 정말 그렇게 했다. 고객님 상품은 15시 23분에 제가 분명 배송을 완료했어요. 전산 기록에 남아 있거든요. 늘 문 앞에 배송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할 수 없죠. 고객 센터에 분실 접수를 하세요. 고객센터요? 접수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뭐, 제가 물어드리는 거죠. 기사님이 물어준다고요? 왜요, 분실 보험 같은 게 없어요?있긴 한데 청구하긴 힘들어요. 제가 일하는 중이라, 아무튼 고객 센터에 접수하시면 돼요. 희수는 저녁 식사 내내 남편에게 이 문제, 사라진 택배의 행방과 고객 센터에 분실 접수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 결국은 본인이 물어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교묘하게 죄책감을 심어주던 기사의 말투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일단 기다려보라거나 조금 더 찾아보라거나 식의 하나 마나 한 대답을 늘어놓던 남편은 한참 만에야 그녀가 원하던 대답, 고객 센터에 정식으로 접수를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그러나 희수는 그러지 못했다. 그건 자신이 배송 요청 사항에 직접 남긴 ‘문 앞에 두세요’라는 문구 때문은 아니었다. 뭐랄까. 주민센터에서 만났던 앳된 그 여자의 겁에 질린 얼굴이 떠올랐고, 불안과 염려 속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출근을 앞둔 저녁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저히 그럴 용기가 생겨나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 내내 조용한 발걸음으로 거실을 오가며 잠깐씩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잘못 가져간 택배를 돌려주러 오지 않을까 하고. 아니, 새로운 직장에서 자신이 곤경에 처한다면 누군가가 한 번쯤 작은 호의를 베풀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희수는 밤 11시가 되기 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모두 연결돼 있어”■ 작가의 말“자기 일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건 점점 어려워지는 듯해요. 작은 호의와 친절이 우리의 노동을 얼마간은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혜진 작가의 ‘사람의 일’은 한 주민센터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중심으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노동에 대해 그린다. 김 작가는 “주민 센터는 나와 가까이 사는 이웃들이 방문하는 곳이고 동네에 거주하는 동안 여러 번 방문할 가능성이 큰, 대체 불가능한 장소”라며 소설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가끔 주민 센터를 방문할 때면 직원들이 국가의 최전선에서 국민들의 불만을 모두 받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김 작가는 “누군가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를 다루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복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타인의 노동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죠. 서로를 조금 더 기다려줘도 좋지 않을까요.” ■ 정 작가는1983년생. 2012년 등단 후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수상.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
    재키 로빈슨, 흑인 첫 MLB 입성… 인종차별 벽 허물어
    재키 로빈슨, 흑인 첫 MLB 입성… 인종차별 벽 허물어 매년 4월 15일에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다. 메이저리그 첫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재키 로빈슨 데이’로 42번은 그의 현역 시절 등번호다. 로빈슨은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1919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 진학해 야구뿐 아니라 농구, 미식축구, 육상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 후 니그로리그(Negro Leagues)에서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백인의 전유물이었고 흑인은 따로 그들만의 리그를 치렀다.브루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리키 단장은 니그로리그에서 활약하던 로빈슨을 눈여겨보았다. 실력뿐 아니라 인종적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을 인성을 갖춘 흑인 선수를 찾던 리키 단장은 그와 계약을 맺었다. 로빈슨은 주변의 만류에 “인생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도전을 받아들였다.흑인 최초 메이저리거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백인 관중들의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다른 구단들이 다저스와의 경기를 거부하는가 하면 팀 내에서도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판들로부터 편파 판정을 당하고 상대 팀 선수들은 고의적인 빈볼 등으로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인종차별과 편견에 당당히 맞섰다. 데뷔 첫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1949년에는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다저스를 6차례 내셔널리그 우승과 한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1956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11과 1518안타, 137홈런, 734타점을 기록했고, 1962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로빈슨의 진출 이후 흑인 선수들이 점차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인종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데 큰 기여를 한 그는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다면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라운드를 떠난 후에는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하다 1972년 세상을 떠났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97년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정했으며, 2004년부터는 재키 로빈슨 데이를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지난 1월 캔자스주의 한 공원에 있던 로빈슨의 동상이 발목만 남겨진 채 도난당해 불에 탄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MLB 사무국과 30개 구단은 동상을 다시 건립하기 위해 당초 동상을 세웠던 ‘리그 42’ 재단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재단에는 30만 달러(약 4억 원)가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로빈슨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야구계는 물론이고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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