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뭄 휩쓸자 굶주린 백성만 300만명… 중국인에 팔려간 ‘을이’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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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1924년 갑자년(甲子年) 조선을 휩쓴 대가뭄으로 300여만 명의 기근민(饑饉民·흉년으로 굶는 사람)이 발생하였다. 이에 굶주린 백성들은 남부여대(男負女戴·가난한 사람들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님)하고 만주 등으로 살길을 찾아 이주하였고 자식을 중국인에게 팔아먹는 일이 자주 신문에 실렸다.

1925년 4월 12일 조선일보에는 ‘을이(乙伊)의 운명을 실은 중국 배 이통호(利通號)의 비밀’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리는데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한번 찾아가 본다.

‘봄날이 차차 따뜻해 갈수록 범죄가 나날이 늘어가는 모양이다. 그중에도 더욱이 미운 것은 중국인들의 부녀 유인과 소녀의 약취(掠取·빼앗아 가짐) 혹은 매매(賣買)이다. 인천은 중국과 교통이 빈번한 곳이므로 요사이 애린회(愛隣會·중국으로 팔려가는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인천에서 탄생된 단체) 위원들은 활동을 개시하였다 한다. 지난 4월 10일 정오 인천을 떠나 중국 지푸(현재 중국 연태) 방면으로 가는 기선(汽船) 이통호에는 중국 의복을 입은 나이 약 10세쯤 된 수상한 소녀 한 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사해 본 즉, 그 아이는 경북 문경군 문경면 하리 76번지 김규용(金圭容)의 장녀 을이(11)로서 그 동리에서 포목상을 하는 중국인 하육진(夏毓珍·45)과 함께 하육진의 고향으로 간다는데, 민적등본과 또 친부 김용규와 그 친모 장씨(張氏)의 승낙서와 인감증명서를 가졌다. 승낙서에는 수양녀로 준다고 명백히 써 있었으므로 애린회 위원과 경찰관은 어찌할 수 없이 을이를 놓아 보내게 되었다. 기자가 을이에게 어찌하여 중국 사람에게 수양녀로 가게 되었느냐고 물은 즉, 을이는 “나는 몰라요. 아버지, 어머니가 중국을 가면 좋은 의복과 음식을 주고 공부시켜 준다고 가라기에 갑니다. 9일 전에 수양딸로 계약을 했대요. 돈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릅니다마는, 하육진이가 우리 동리에서 크게 포목전을 해요. 가기는 좋지 않지만 안 갈 수는 없어요” 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속임 없는 하소연을 하는 것은 참으로 가엾다. 그리고 하육진에게 수양녀로 데려가는 이유를 물은 즉, “나는 자식이 없어서 항상 유감으로 알던 바 김규용이는 나의 친구인데 다행히 승낙하므로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길러 팔아먹다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보증이라도 하지요” 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기는 하나 우리로서는 저 중국인이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조선 계집애를 데려가는 동기(動機)가 사실상 저자의 말과 같을까. 또 자기 자식을 조선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중국인에게 수양딸로 주었을까. 참으로 해득(解得·뜻을 깨쳐 앎)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인천) (사진은 이통호를 배경으로 을이와 하육진을 찍은 것)

풍선을 누르면 가장 약한 곳이 제일 먼저 터진다고 한다. 기울어진 나라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천항을 떠나간 11살 을이… 지금 이 땅에는 이런 을이가 없다고 자신 있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4월의 봄바람이 아직도 차갑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