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형 김정철, 역사전문 학술지 기고자로 등장…새 역할 부여받았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44). 일본 아사히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의 역사전문 학술지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이란 이름이 기고자로 실리면서 외교·안보 당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필자 김정철은 유일하게 직책과 소속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샌드타임즈가 지난 4일 북한의 역사전문 학술지 력사과학 잡지(2024년 2월호)를 입수해 분석한데 따르면 잡지에 나온 23명의 다른 기고자들은 모두 조선사회과학원 실장,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등 소속과 직책을 명확히 했다. 김정철의 직책과 소속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단지 보안상의 이유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고위급 출신 탈북민 A씨는 "특수한 신분으로 소속과 직책을 공개해선 안되는 중요 인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혼자 소속과 직책을 밝히지 않은 점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로 추정된다"며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자신감을 보이는 시점에서 경쟁 상대가 아닌 친형을 제한된 범위에서 서서히 공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철은 ‘우리 공화국을 핵 보유국의 지위에 올려세우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업적’ 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냈다. 기고문의 핵심 내용은 1990년대 초 미국의 압박 속에서 김정일이 자주권 수호를 위해 핵개발을 결단했고, 2006년 첫 핵실험과 2009년 두 번째 핵실험 성공으로 당당한 핵 보유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밝혔다. 김정철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만든 것은 "천출명장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업적"이며 "영웅적 결단"이라고 찬양했다.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 기고문은 ‘핵 보유의 정당성’을 재정립하는 역사적 수사로도 해석된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을 역사적 유산으로 공식화하려는 이번 기고문이 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띄우기 시작한 것과 시기가 맞물린다는 점이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자녀로 추정되는 아이들도 공개되면서 김씨 가문의 ‘4대 세습’ 구도가 빠르게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정 센터장은 "김정철의 등장은 가문 전체의 역사적 정당성, 핵 보유의 당위성을 되새기는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며 "김정철이 가문의 역사 기록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철은 김정일의 둘째 아들이자 김 국무위원장의 형이다. 김 부부장의 오빠이기도 하다. "여자아이 같고, 권력욕이 없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자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기타와 음악에 빠져 살던 김정철이 김정일의 ‘핵 유산’을 정당화하는 역사 서사를 직접 집필했다는 점에서 그의 지위에 변동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북한은 ‘후계자 외엔 모두 제거’라는 잔혹한 권력 계승 문법을 따랐다. 김 국무위원장이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김정철은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외다. 다만 김정철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혈통적 정통성을 갖추고 있어, ‘가문의 유산’과 ‘핵 정당성’이라는 무형 자산을 관리하는 비공식 문고리 권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