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허남정 단장 동행기<5>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시모노세키 조선통신사 상륙비 앞에서 단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울산을 출발 양산을 거쳐 부산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다음 쓰시마와 이키섬에서 1박을 했다. 하카타 항에 상륙해서는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 그리고 오늘은 시모가마카리를 둘러 보았다.

이곳은 세토내해의 작은 섬으로 조선통신사 일행이 11회를 이곳에 머물렀다. 통신사 일행 400-500명에 쓰시마 도주 이하 1000여 명의 수행원이 함께 했다.

전시관에는 조선통신사 일행에게 내놓았던 진수성찬의 상차림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정사 등 삼사는 무려 35첩 반상을 받았다. 조선의 임금님 수라도 12첩 반상을 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말단 수행원이 받은 5첩 반상도 막부 쇼군의 식단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1711년 제8차 통신사 일행이 에도(지금의 도쿄)에 도착해 각 번의 향응을 쇼군이 물었을 때 쓰시마 도주는 이곳 가마카리가 최고였다고 했다. 통신사의 방은 조화를 장식했는데 생화를 놓으면 꽃의 향기로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고 자칫 꽃가루가 통신사의 옷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통신사 행렬이 지나가는 길에는 네덜란드산 카펫을 깔았고 삼사가 머무는 방의 침구도 네덜란드산이었다고 한다. 지역의 영주들에게는 환대에 최선을 다하라는 막부의 지시가 내려졌으며 영주들이 경쟁적으로 접대에 임했다고 한다. 통신사의 향응을 최대한 호화롭게 한 것은 지방의 재정을 약화시켜 반역의 기운을 잠재우려는 에도 막부의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지난 한 주일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걸으며 단원들은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역사의 현장들을 경험했다. 울산 태화루에서의 환영 행사에서는 울산고 학생들로부터 교토의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선물 전달을 부탁받았다.

이 학교는 재일동포 자녀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인데 학생 수는 고작 161명에 불과하다. 이런 학교가 작년 8월 고시엔 야구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일본 열도가 경악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우승교의 우리말 가사 교가가 일본 전국에 생중계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본 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쓰시마에서는 시장이 직접 이즈하라항 부두에 나와 쌀쌀한 날씨 속에 환영식을 열어주었고 저녁 식사에도 참석했다. 도착 다음 날 일본 최대 신문 요미우리가 우리의 쓰시마 도착 소식을 사진과 함께 크게 실어 주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종이 신문이 힘을 발휘한다.

이키섬에서는 젊은 시장이 시청 강당에서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주었고 저녁에는 이곳 특산품 보리소주를 숙소로 보내왔다. 녹색의 산과 들 그리고 길에 핀 유채꽃 수선화 등 야생화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불케 했다. 시민들이 걸어가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카타항에 상륙하니 민단 관계자들이 대거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관문대교를 건너니 바로 시모노세키다. 일제강점기 관부연락선이 오가던 항구로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곳이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선거구이기도 하다.

이곳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옛 이름 조슈번의 심장으로 이후 일본의 역대 총리는 대체로 이곳 출신이었다.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를 둘러보았고 기념비 길 건너 아카마 신궁은 통신사 일행이 숙박했던 곳이었다.

근처의 ‘슌판로’라는 고급식당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1894년 4월 청나라 이홍장을 불러들여 강화조약을 맺은 곳이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청나라와의 오랜 주종관계에서 벗어났으며 이를 기념하여 서대문에 독립문을 세웠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났다. 이곳은 1945년 8월 6일 아침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터진 비극의 도시로 우리에게는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한국인 피폭자위령비를 찾아 헌화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교민 10여 명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도쿄까지의 장도를 격려해주었었다.

시모가마카리 견학을 마치고 근처 공원 잔디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벚꽃이 만개한 곳이라 마치 소풍을 나온 기분이었다. 올해는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지 6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젊은이들이 베낭을 매고 이 길을 걸으며 선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평화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시모가마카리 전시관 앞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