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이재민 곁에 선 한국 의사 13인의 땀방울, 지옥 같은 땅에서 연꽃을 피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규모 7.7의 강진 피해를 입은 미얀마 현지에서 그린닥터스와 온병원 의료진이 상처 입은 주민을 치료하고 있다. 온병원 제공

그린닥터스재단-온병원, 4~10일 미얀마 재난 현장서 긴급의료지원
40도 폭염 속 왕진·상처 소독·트라우마 상담…"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가족 잃은 이재민 눈물에 답한 한국 의료진의 손길
반군 활동 지역도 마다않고…만달레이까지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생명

부산=이승륜 기자

"40년 경력의 한국 베테랑 의사들이 미얀마에서 진흙 속 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비영리 의료봉사 단체인 그린닥터스와 온병원이 꾸린 긴급의료지원단이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미얀마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며, 우리 국민의 관심과 도움을 요청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8일, 규모 7.7의 강진이 미얀마 사가잉주 인근을 강타했다. 1948년 미얀마 독립 이후 최대 규모로 기록된 이번 지진은 전국을 폐허로 만들었다. 수도 네피도와 제2도시 만달레이는 물론, 방콕까지 건물이 무너지고 매몰 사고가 발생했다. 지원단원 13명은 4일부터 10일까지 네피도와 만달레이 등지에서 긴급의료지원을 펼쳤다.

단장인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안과 전문의)은 매일 활동 상황과 참사 현장을 전하며, 지진 피해 돕기 캠페인에 한국인의 동참을 요청했다. 다음은 8일 정 단장이 현지에서 전해온 활동 내용이다.

지난 6일, 섭씨 40도에 달하는 무더위 속에서 네피도 난민촌에 설치된 임시진료소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늦게까지, 또이야다나 유치원 등에서 첫 의료지원을 진행했다. 주변은 완전히 붕괴된 건물 잔해로 가득했고, 피난민들은 패닉 상태에서 각종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지원단은 내과, 외과, 정신과, 안과 등 4개 진료실을 운영하며 150여 명을 진료했다. 정 이사장을 비롯해 김석권 온병원 성형센터장(성형외과 전문의), 김상엽 온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용 그린닥터스 이사(열대병 전문의) 등 60~70대 베테랑 의료진은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진료를 이어갔다.

전기가 끊겨 시설 활용이 불가능했지만, 이들은 왕진까지 나섰다. 김정용 이사는 심장질환 환자에게 베타차단제를 투여했고, 약을 구하지 못한 기저질환자들을 돌봤다. 가족을 잃고 충격에 빠진 한 여성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이라며 오열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규모 7.7의 강진 피해를 입은 미얀마 현지에서 그린닥터스와 온병원 의료진이 현지 주민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온병원 제공

오후에는 네피도 6번 고교로 이동해 진료를 이어갔다. 주민들은 수심 어린 얼굴로 왔다가 치료를 받고 안도하며 돌아갔다. 미숙한 통역에도 짜증 없이 서로를 위로하며 기다리는 풍경은 의료진과 이재민들이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김상엽 센터장은 트라우마로 멘붕 상태에 빠진 환자를 상담과 약 처방으로 안심시켰고, 김석권 센터장은 곪은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랐다. 진료소는 전장 한복판을 방불케 했지만, 그 속에서 연대가 피어나고 있었다.

앞서 지난 4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원단은 양곤에 도착한 뒤 5일 네피도로 이동했다. 도로는 파손됐고, 예약한 호텔도 폐쇄돼 결국 방갈로를 숙소로 정했다. 방이 부족했지만 현지인의 배려로 전용 숙소를 제공받았다.

이번 활동은 황을선 국제종교연합 이사의 주선으로 딴따익 장군의 도움을 받아 의약품 통관과 진료 허가를 원활히 받을 수 있었다. 미얀마 정부는 2008년과 달리 외국 의료진에게 진료를 허가했고, 그린닥터스는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공식 허가를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7일 새벽 3시, 지원단은 만달레이로 출발했다. 진앙지에 가까운 데다 반군 활동 지역이라 위험이 따랐지만, 의료진은 계란 2개와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5시간을 달려 현지 YMCA에 도착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규모 7.7의 강진 피해를 입은 미얀마 현지에서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이 현지 주민의 눈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온병원 제공

현지 여의사의 협조로 공동 진료가 이뤄졌다. 김석권 센터장은 골절된 70대 여성의 상처를 봉합했고, 당뇨발 환자의 괴사조직을 치료했다. 정 이사장은 눈병 환자에게 안연고를 나눠주며 사용법을 설명했고, 김상엽 센터장은 아이들과 여성 환자들을 다독이며 정신적 안정에 힘썼다.

김정용 이사는 미얀마 여의사와 협력 진료를 펼치며 환자 상태를 공유하고 약제를 조정했다. 현지 의사는 세계적 명의들과 함께 진료하는 것에 감격해했다.

진료소는 환자들로 끊임없이 붐볐고, 의료진은 점심도 거른 채 진료에 매달렸다. 문예진 온병원 수간호사, 임영문 그린닥터스 이사, 박명순 사무총장, 송정관 사무부총장, 박준수 사무국장 등은 각자의 자리에서 진료소 운영을 책임졌다.

온병원 관계자는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고통을 나누는 이들의 활동이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