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대응 正道와 ‘고마운 바보’ 우려[포럼]

김종훈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봄은 왔지만, 마음은 어둡고 시리다. 만우절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날리면서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고 했다. 예고된 일이긴 했지만, 그 내용이 터무니없어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관세를 카드로 세계 경제와 한판 도박을 벌여 보겠다는 그의 정책이 틀렸다는 근거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 이미 미국 시장에서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일방 조치에 대한 각국의 반응을 보면 그 나라의 국력, 국제적 위상, 품격 등이 녹아 있다. 미국의 주적(主敵)으로 등장한 중국은 제쳐 놓고 우방들 반응을 보면, 즉각적 보복 예고 같은 강경 자세를 보인 나라에서부터 미지근한 유감을 표명한 나라 등 다양하다.

이 경우, 우리가 곧잘 관찰하는 일본은 바로 지난 3일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 “매우 유감. 일본 제외되도록 강력히 요청하고 질기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의 침묵이다. 물론 미측 발표 다음 날인 4일은 모든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 결정이 예정된 데다 전대미문의 산불 피해 등으로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은 된다. 이어서 주말이 왔고, 이제 와서 입장을 내기엔 이미 늦었다.

트럼프 집권 전부터 우리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다 보니 무게 있는 대응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통상 당국이 발품을 팔아 갖은 논리로 설득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알려진 우리 통상 당국의 대미 메시지는 최소한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해 달라는 매우 얌전한 요청이었다.

그런데 정작 발표된 내용을 보면, 군사동맹인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도 무시한 채 25%의 상호관세를 때렸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미국과 FTA가 없는 유럽연합(EU)이나 일본보다도 높은 것이다. 한미 FTA가 발효된 지난 15년간 우리는 대미 관세를 약속한 대로 착실히 내렸고,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협정 내용을 두 번이나 고쳤다. 팔지만 말고 투자를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응해 2023년에는 한국이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 제1위 국가가 됐다. 투자를 하면 혜택이 있을 것이라던 트럼프의 언급도 빈말이 됐다.

국내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타결하고 지켜온 한미 FTA가 경제긴급권을 발동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국에는 휴지가 된 데 반해, 우리나라는 관련법에 따른 대항조치(FTA관세법 제26조)를 취하지 않는 이상 협정 내용을 계속 지켜야 하는 불합리하고 불편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 국내법에도, 협정문에도 체약국 간에 협정의 이행을 두고 이견이 있을 경우 상호 협의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은 당연히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당한 예외 조치임을 강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협의 자체가 배제되는 건 아니다. 미국 또한 상대국과의 협상을 예견하고 있다. 미국의 초치(招致)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협의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고, 냉정하고 끈질기게 협상할 수 있는 길을 열기 바란다. 가만히 있으면 ‘고마운 바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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