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위기 속 73조 유치 ‘뚝심’… 국정혼돈 속 해외서한 ‘신뢰 행정’[Leadership]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해 10월 28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센터에서 열린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사람중심경제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기도청 제공

■ Leadership - 김동연 경기도지사

도지사 되자마자 경기 집중호우
취임식 취소하고 재난상황실로
첫 업무 결재도 ‘비상경제 대응’

민생 위해 ‘성장동력 확보’사활
소상공인 육성자금 4.3조 지원
중소·벤처 ‘G펀드’ 1.2조 조성

계엄이후 잇단 외교·안보 행보
WEF서 韓경제의 잠재력 알려
소신발언에 與野러브콜 받기도

수원=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 속에서 더욱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경제위기가 심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변국 관세 인상 방침이 국내 산업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국가 지도부 공백까지 장기화하는 가운데 위기에 대응하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상계엄 해제 직후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혼란 속에서 해외 각국 정상급 인사에게 서신을 통해 국내 상황을 설명하는 등 대외 신인도 급락 방지에 주력하는가 하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도 참가해 우리 경제의 굳건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처럼 위기에서 빛을 발한 리더십은 그가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로 주목 받는 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김 지사에게 정치적으로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는다면 지난 2022년 6월 2일 오전 5시 32분일 것이다. 전날 시행된 제8회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역전한 순간이다. 지방선거 참패를 목전에 두고 있던 민주당에 값진 승리를 안겨준 김 지사는 곧바로 당내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판자촌의 10대 가장에서 은행원, 경제 관료, 대학 총장을 거쳐 정치인이 되기까지 김 지사의 인생 여정 중 어떤 순간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경기지사로서 임기를 시작할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김 지사가 취임한 2022년 7월 1일은 전날 수도권을 덮친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수해와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그는 피해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취임식을 취소하고 도청 2층 재난상황실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민선8기 경기도에서 그의 첫 업무결재도 경제위기와 맞닿아 있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高) 현상 장기화에 대비해 수출기업에 물류비를 지원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농어업인 등 경제 주체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비상경제 대응 민생안정 종합계획’이 그것이다. 김 지사는 당시 “어려운 도민들의 삶을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서 1호 결재로 민생경제 대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원 관료로서 최일선에서 위기를 수습한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 당시에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서 두 번에 걸친 예산 추가경정과 7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를 이끈 경험이 있다.

민생경제 살리기와 신성장 동력 확보에 사활을 건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글로벌 기업과 첨단기업으로부터 73조3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는 임기 안에 투자 유치 목표액을 100조 원 이상으로 설정하고 활발한 세일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육성자금 5조7234억 원을 지원하고, 도내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조성한 ‘G펀드’의 경우 당초 목표했던 1조 원을 넘어 현재 1조2128억 원이 조성된 상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해 ‘경기 RE100(신재생에너지 100%)’을 선언한 그는 도내 공공기관 18곳에 시간당 13㎿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해 태양광 발전사업이 가능한 산업단지를 50개에서 99개로 확대했다. 주택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은 가구별 월평균 7만 원의 전기료 절감 효과가 나타나 호응을 얻고 있다. 도는 재생에너지 이용 확산을 위해 현재 전국 최초로 재생에너지 입지 분석과 건물 에너지 사용량 정보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기기후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더 경기패스’(지불한 대중교통 운임 일부 환급)의 경우 가입자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김 지사가 도정에 애쓴 결과는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하는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직무수행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8월 5위 수준이었던 김 지사의 직무수행 평가 순위는 1년 후인 2023년 8월 3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7∼8월에는 1위를 기록하는 등 최근 줄곧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연(가운데) 경기지사가 취임 첫날인 지난 2022년 7월 1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사 집무실에서 1호 결재 서류인 ‘비상경제 대응 민생안정 종합계획’에 서명하고 있다. 경기도청 제공

도정에 전념하던 김 지사가 지역을 초월한 광폭 행보에 나선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3일 선포됐던 비상계엄이었다. 당시 TV를 통해 계엄 선포 사실을 접한 그는 행정안전부의 경기도청 사무실 봉쇄 명령을 거부할 것을 직원에게 지시하고 곧바로 출근해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튿날에는 해외 2500여 명의 외국 정상과 주지사, 국제기구 수장, 주한대사, 기업 대표에게 ‘긴급서한’을 보냈다. 김 지사는 서신에서 ‘한국의 회복력’을 강조하며 안심할 것을 당부하는가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귀사와 경기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1410만 도민의 도지사이자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로서 약속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에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과 페터르 판데르 플리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 브루노 얀스 주한 벨기에 대사, 응우옌 득 쭝 베트남 응에안성 당서기 등이 답신을 보내 한국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한 주한 외교관은 “김 지사의 진솔한 서한이 외교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통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비상계엄 및 탄핵사태 속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올해 1월 8일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를 잇달아 방문해 한국에서의 적극적 기업활동과 투자를 요청했다. 필리프 베르투 주한 프랑스대사와의 만남에서는 양국 간 반도체·인공지능(AI)·스타트업 분야 협력을 논의한 결과 프랑스 에어리퀴드 사의 프랑수아 자코 회장이 직접 경기도청을 찾아 2500만 달러(약 350억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 지사의 외교·안보 행보는 지난 1월 18∼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WEF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주최 측이 마련해 준 ‘김동연 경기도지사와의 대화’라는 이름의 세션을 열고 세계 미디어 리더들에게 한국 정치경제 상황을 브리핑했다. 다보스에서 한국의 야당 지도자를 위해 ‘미디어리더 브리핑’을 개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김 지사는 미국·영국·중국 등 세계 주요 외신 앞에서 “이번 정치적 불확실성의 위기에서 벗어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해지고, 경제는 번영할 것”이라며 한국경제의 잠재력과 회복 탄력성을 세계에 알렸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같은 진영이라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점은 김 지사가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지지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당의 노력이 실망스럽다”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등의 고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정권 실세였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소신 발언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그가 경제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서는 그를 차기 대선주자로 내세우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김 지사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부총리”라고 강조하며 미래통합당 합류 가능성을 일축했다. 2021년 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민주당 후보로서 출마할 수 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 역시 끝내 불출마했다. 그가 여야 모두에게서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신 행보가 중도층 표심을 잡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물결’을 창당하며 제3지대 개척을 시도했다. 당시 김 지사는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정치판을 바꾸고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엉터리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 싸움이 아닌, 여도 야도 아닌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일으키는 무리’라는 뜻의 ‘아반떼’를 결집해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가 제7공화국 출범을 위한 개헌을 강조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헌을 향한 김 지사의 새로운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달에는 5일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일곱 번째 나라 랩(Lab)·포럼 사의재 주최 공동심포지엄’에서 대한민국이 직면한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와 진보·보수가 함께하는 ‘경제 대연정’과 ‘내 삶을 바꾸는 5대 빅딜’을 제안했다. 김 지사는 “내 삶이 더 나아지는 나라, 튼튼한 경제와 민생으로 국민 개개인의 잠재력을 꽃피우는 나라가 되려면 정권교체 이상의 교체, 즉 ‘삶의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면서 “앞으로 3년이 향후 30년을 좌우하는 만큼 3년 안에 신속하고 과감한 빅딜로, 대한민국 대전환의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