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특수성 인정한 수입정책… 美 “비금전적 장벽” 트집 잡아 관세폭탄 [10문1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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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비관세 장벽

관세처럼 명시적 부과 아니지만
교역 상대국에 수출활동 큰 제약

각국 “정당한 보호조치” 반발 속
트럼프, 상호관세에 반영 강행

망사용료 의무화·무기 절충교역
美, 韓에 불만제기하며 시정요구

韓, 제조업분야부터 협상 나설듯
농산물은 장기간 신중 논의 전망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의 주요 근거로 ‘비관세 장벽’을 내세우면서 향후 있을 협상에서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을 둘러싼 미국과 각국 간 공방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각국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비관세 장벽이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을 막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이 향후 한국과의 협상에 나설 때 상호관세 부과 근거로 제시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망 사용료,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 이상 수입제한 등을 재차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큰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 비관세 장벽이란 무엇인가.

비관세 장벽이란 특정 국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거나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조정하기 위해 관세 이외의 방법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이나 규제를 의미한다. 관세처럼 명시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교역 상대국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상대국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며 수출 활동에 큰 제약을 준다. 대표적인 예로는 수입 허가제, 기술적 규제, 검역 절차, 원산지 규정, 환경 및 안전 기준, 보조금 지급, 행정 절차 지연 등이 있다. 최근에는 특히 환경과 지속 가능성, 노동 기준 등 비경제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한 비관세 장벽이 늘어나는 추세다. 비관세 장벽은 단순한 수입 제한 수단을 넘어 국가 간 무역의 질과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 비관세 장벽이 주목받는 배경은?

전 세계적으로 비관세 장벽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관세 전쟁의 도화선을 당긴 트럼프 행정부가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해 각국에 대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 지난 2일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제시한 핵심 근거는 ‘비관세 장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국가별 무역장벽 연례보고서를 직접 흔들며 “금전적 장벽보다 비금전적 장벽이 더 나쁘다”며 “(우리 상대국들이) 미국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사실상 관세가 없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25%의 상호 관세율을 책정했는데, 앞서 미 무역대표부는 해당 보고서에서 한국의 다양한 비관세 장벽을 지적하기도 했다.

3. 美가 지적한 韓의 비관세 장벽은?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약 7페이지 분량에 걸쳐 △기술 및 위생 △공공 조달 △지적재산권 △서비스업 △전자상거래 △자본투자 △기타(자동차 및 제약) 등 7가지 분야 총 21건의 무역 장벽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월령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화학 물질 등록·평가에 관한 규제, 네트워크망 사용료, 플랫폼법 추진, 공공 부문에 적용되는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 인증(CSAP), 약값 정책 등을 주요 무역 장벽으로 규정했다. 또 배출 가스 규제 불투명성 등에 따른 자동차 시장 진입 규제도 거론했다. 한국 정부가 1000만 달러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 등을 살 때 기술이전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과 외국인의 한국 원전 소유를 금지한 규정에 대한 불만도 처음으로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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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美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시정요구로 국내에서 가장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미국 정부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시정 조치 요구로 국내에서 가장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자동차와 농산물 등이 꼽힌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상호관세는 추가로 매기지 않기로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일본과 다른 매우 많은 나라가 부과하는 모든 비금전적 (무역) 제한이 어쩌면 최악”이라며 “이런 엄청난 무역 장벽의 결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는 한국에서 생산됐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비관세 장벽이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도 언급되면서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쌀의 경우 한국이 물량에 따라 50%에서 513%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문제 등도 무역 장벽으로 언급하면서 국내 농·축산물 산업도 관세 사정권에 진입했다는 관측이다.

5.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절충교역’을 문제 삼는 배경은.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이 외국에서 무기를 들여올 때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교역 형태인 ‘절충교역’이 ‘무역 장벽’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절충교역은 외국의 무기·장비 등을 구매할 때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관련 지식·기술을 이전받거나 상대방에게 자국산 무기·장비·부품 등을 수출하는 식으로 일정한 반대급부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교역이다. 전 세계 공통의 무기 거래 관행으로 어느 나라든 관례로 시행하는 절충교역을 미국이 걸고넘어지는 것은 현재 한국과 미국이 진행 중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협상 전술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국방 분야의 FTA 협상이라고 불리는 RDP-A 체결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 자국 방산 업계 보호를 위해 적용하는 자국산우선구매법(BAA)이 RDP-A 체결국에는 예외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언급한 바 있는데 미국이 함정 건조 등을 한국 업체에 맡길 경우 RDP-A를 체결해야 가격경쟁력 면에서 유리하다. 이에 따라 미국이 RDP-A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미리 마련하고자 절충교역을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6. 디지털 시대의 비관세 장벽은.

전 세계 산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하면서 자국 산업이 보유한 데이터·알고리즘·플랫폼 등 자산을 지키려는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이 ‘관세 전쟁’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우리 국회와 국내 정보기술(IT)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콘텐츠 공급기업에 대한 ‘망 사용료 의무화’ 추진을 비관세 장벽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에도 일명 ‘망 무임승차 방지(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 규제 방안인 ‘온라인 플랫폼법(플랫폼법)’ 역시 미국이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법안은 온라인 플랫폼이 입점 업체나 소비자와 거래할 때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디지털 분야의 대표적 비관세 장벽으로는 ‘데이터 현지화’ 규제가 꼽힌다. 이는 외국계 기업이 수집한 데이터를 반드시 해당 국가 내 서버에 저장하거나 해외로의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현재 중국·인도·러시아 등 여러 국가가 개인정보보호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데이터 이동에 제약을 두고 있다.

7. 해외 비관세 장벽 사례는.

여러 국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비관세 장벽으로는 ‘무역기술장벽(Technical Barriers to Trade·TBT)’이 꼽힌다. 이는 품질이나 안정성, 환경 등을 이유로 까다로운 기술규정과 표준, 적합성 평가 절차 등을 적용해 수입품의 판매 승인을 지연하거나 가격을 높이는 방식이다. 미국은 유럽연합(EU)이 환경문제를 이유로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미국산 제품이나 유전자변형생물체(GMO)의 판매 승인을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각종 데이터를 자국 내에 보관시키도록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과 인도, 호주가 이러한 규제를 적용해 미국 빅테크 기업의 자국 내 운영 비용과 규정 준수 비용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비관세 장벽은 자국 내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중국, 일본 등이 자국 농업에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를 문제 삼고 있다.

8. 미국 비관세 장벽 주장에 대한 국가별 대응은.

이러한 미국의 비관세 장벽 지적에 대해 해당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정당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 무역 전문가들은 관영 글로벌타임스에서 “산업 보조금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책이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보조금 정책만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 역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보관 규정이 데이터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장치라면서 이를 무역 장벽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역시 데이터 관련 규제 등 미국이 지적한 자국의 비관세 장벽들에 대해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수정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9. 비관세 장벽 요인과 상호관세에 따른 수출입 영향은.

당장 미국산 수입에 있어 미국 정부가 지적하고 있는 한국의 비관세 장벽 요인은 자동차 관련 규제,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번식 가능한 유전자변형농산물(LMO) 승인 절차, 제약 및 의료 기기 관련 가격 산정 불투명성 등이다. 이들 비관세 장벽 요인을 일부라도 해소하면 지난해 721억 달러였던 대미 수입액이 일정 수준 증가하는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비관세 장벽 요인을 명분으로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에 따른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더 타격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BK경제연구소는 미국이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12.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하나은행은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로 인해 대미 수출이 종전보다 13% 이상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인해 각국 간의 무역이 전체적으로 침체되면 세계 무역이 위축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더 확대될 수 있다.

10. 향후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은.

정부는 이번 상호관세 부과를 계기로 비관세 장벽 요인에 관한 대미 협상을 보다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지난 2일 한국 25% 등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한 직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긴급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소집해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를 추진하는 등 각급에서 긴밀한 대미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곧바로 방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우선 양측은 자동차 등 양국 제조업계에서 동시에 규제 완화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분야부터 접점을 찾아갈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업체뿐만 아니라 국내 업계에서도 자율주행기술 등 첨단기술 개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과도한 안전규제에 관해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농산물 분야에서는 보다 장기간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측도 소고기 등 먹거리 규제에 관해 한국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성급히 논의될 경우 미국산 먹거리 전체에 대한 반발심이 높아져 오히려 미국산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측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병철·이소현·박준희·황혜진·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