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위비 패키지 협상’ 선긋기… “우리가 먼저 꺼낼 이유 없다”

■ 미국 상호관세 90일 유예

트럼프는 또 주한미군 비용 언급
관세·방위비 묶음협상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포함한 ‘패키지딜’을 연일 압박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에 휘말려선 안 된다며 선을 긋고 있다. 통상 문제와 달리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주한미군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보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유럽이나 해외에 있는 미군을 감축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우리는 유럽에 있는 군에 대해 비용을 내지만 (그에 대해) 충분히 보전받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주한미군을 콕 집어 지적했다. 또 그는 “무역과는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역 협상의) 일부로 할 것”이라며 “한 개의 패키지로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관세 협상을 위한 ‘협상안 패키지’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안을 포함하라는 압박이다.

존 노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 대행은 같은 날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부담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까지 패키지에 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통상 문제에 방위비 분담금을 얹으면 단순한 수식이 고차 방정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결정되는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은 한미동맹의 주요 근간으로 통상 문제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 외교 당국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SMA 협상은 한·미가 별도의 협상팀을 꾸려 길게는 1년 이상 협상한다. 만약 통상 문제와 엮어 SMA 협상이 이뤄진다면 양국의 외교 당국뿐 아니라 통상 당국 모두가 복잡한 계산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10월 12차 SMA 협정을 서둘러 체결하기도 했다. 이 협정은 2026∼2030년 적용된다.

총리실 관계자는 “미국이 협상하자고 본격적으로 나서면 우리가 나서긴 해야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했을 뿐 딜(협상)하자는 이야기가 오진 않았다”며 “우리가 먼저 방위비 분담금을 패키지에 담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역시 전날 “우리는 꾸준한 방위비 증액을 통해 주한미군의 안정적 유지와 한·미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기여해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강화할 것인바, 미 측에도 이를 적극 설명하고 협의해 나가고자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선을 그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