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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금 협상 화두는 ‘최소한의 최대’[포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 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를 포함한 여러 나라와의 협상을 ‘원스톱 쇼핑’이라고 표현했다. 경제·안보 및 상호 관심사 모두를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동시다발적, 포괄적 협상을 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트럼프는 관세라는 무기를 휘둘러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경제·통상 문제와 함께 한반도 안보와 미국의 방위공약 이행이 매우 중요한 의제다.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히 타산적이고, 불평등한 주고받기식 거래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반면, 물가 상승과 주가 하락 등 관세 전쟁의 여파에 대한 대응의 우선순위로 인해 지정학적 고려나 동맹의 중요성 등 전통적 차원의 전략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한국을 현금 인출기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미동맹의 가치를 호소하고 호의적 고려를 읍소하는 일은 약한 모습만 드러낼 뿐 효과는 없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대응은 우리의 입지에 불리하며 냉철하고 전문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그런 면에서 우리 정부가 보복이 아닌 협상을 택한 것은 현명한 첫걸음이다. 25%의 관세 부과가 일단 유예됐지만, 이에 수반되는 통상 협상은 국익 차원에서 지체 없이 개시되고 신속히 마무리돼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 핵 문제, 미·북 정상회담,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전략적 유연성) 등 외교 안보 현안의 협상(협의)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방위비 분담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어처구니없는 증액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정권교체 후 합리적 수준으로 합의됐다.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 건설비, 군사 지원비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 가지 항목으로는 아무리 늘려 봐도 기존 규모의 1.5배 이상을 넘을 수가 없다.그런데 트럼프는 1기 때 기존의 세 가지 항목 외에, 역외 미군 전략자산 전개 비용과 주한미군 순환 배치 비용 등을 새로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추론컨대, 미국은 이번에도 그때의 입장을 반복하면서 현재 1조5000억 원 규모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면, 우리 안보 강화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져 진지한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최대’라는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64년 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련과의 평화 협상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며, ‘두려움에 쫓겨 협상하지 말되, 협상을 두려워하지도 말자’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해낼 수 있는 외교적·경제적 역량이 충분하다. 정치가 타락과 실종을 반복하며 국민을 저버릴 때일수록 정부는 강인한 자세로 국내외로 어려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의 정책이 일시적 일탈인지 항구적 변화의 시작인지를 물으며 주저해서도 안 된다. 어차피 지금의 천방지축 변화는 트럼프 이후에도 일부 남아서 뉴노멀을 형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자강 노력 속에 상황에 맞게 능동적 대처를 하는 것이 2029년 미국의 새 대통령을 마주할 준비를 하는 실용적 자세이기도 하다. 그때는 중국도 북한도 미국도, 세상은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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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0 11:50
대선 승부처는 ‘李포비아’와 尹변수[포럼] 계엄과 탄핵에 이은 6·3 대선은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이재명이냐 아니냐’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흐름의 확인이다. 대선 캠프가 출범하고 500명 규모라는 싱크탱크 ‘성장과 통합’도 발족한다.대권 가도의 첫 과제는 ‘갈등과 돌발 변수 없는 경선’이다. 계속 중인 대장동 의혹도 이낙연 후보와의 경선 중에 나왔다. ‘박용진 불출마 선언’은 이재명 인증이지만, 야권과 비명계의 ‘야권 합동 국민경선’은 불편하다. ‘당원 중심 정당’으로 “당원 투표권 박탈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예정된 선거 결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는 반박이 나온다. ‘경선 보이콧’까지 갈지가 관심이다.분출하는 개헌론에 “내란 종식에 집중해 달라”고 했다. 국회의장도 “개헌·대선 동시투표”를 주장했다가 문자 폭탄에 “개헌 수괴이자 수박” 소리를 듣자 단념했다. ‘개헌 대통령’ 출마 선언은 ‘임기단축 개헌’의 비명계 연대를 전망케 한다. 게다가 ‘박스권 지지율’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 대표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지만, 지지율은 30%대다. 최근 갤럽의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모름과 응답 거절’이 38%로 가장 많다. ‘정권교체론’이 62%지만, 이재명 지지율(34%)로 연결되진 않는다. 특히, 계엄 이후 지지율이 ‘의견 유보층’을 앞선 경우가 없다. NBS 조사에서 ‘이재명 호감도 38%, 비호감도 57%’와 같은 맥락이다.중도 무당층이 핵심이다. 다자와 양자 대결 모두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지만, 무당층은 다르다. 그는 김문수에게만 승리하고 유승민에게는 10%포인트 뒤진다. ‘이재명 포비아’다. ‘입법권력에 행정권력까지 장악한 이재명 권력의 공포심’이다. 그를 지지하지 않거나 지지를 고민하는 중도 무당파 유권자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미래의 사법 리스크도 있다.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유권자 10명 중 6명이 ‘당선되더라도 재판 계속’ 하라고 한다. 특히 20대는 74%, 30대는 67%로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재판 계속’이 높다.국민의힘 경선은 윤석열 전(前) 대통령이 변수다. 그가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면서 탄핵 반대 후보를 지지하면 당은 ‘친윤 대 반윤’의 대립이고, 대선은 ‘이재명 대 윤석열’의 재대결이다. 국민의힘 지지층 10명 중 8명이 ‘탄핵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믿는다. ‘당원 50% + 국민여론조사 50%’의 경선룰은 강성 보수층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윤심 계승자가 경선의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윤석열의 사저(私邸) 정치’의 끝은 신당 창당으로 의심된다.‘윤석열 출당’이 국민의 47%지만, 보수층의 58%는 반대한다. 결과는 전체 대상 조사에서 유승민이 1위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꼴찌이고 김문수가 1위다. 국민 10명 중 7명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자숙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연하지 않으면 필패”이고,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90.3%가 ‘정권 재창출이 필요하다’하고, 무당층의 70%가 대통령 파면에 긍정적이다. ‘범보수 합동경선’을 통한 당원과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한국 보수는 ‘10년 내 2번의 탄핵 대통령’을 배출했다. ‘보수의 연패’다. 성찰과 책임,혁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 문화일보
- 2025-04-10 11:49
韓대행의 헌법적 지위와 권한의 범위[포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8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공석을 메우는 조치를 했다. 국회 절차를 거친 마용주 대법관과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18일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2명) 지명에 대해서만 “위헌적 행태”라며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2인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접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논거는 ‘대통령 몫의 재판관 지명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권한대행은 필요 최소한의 현상 유지를 위한 정도로만 대행하는 것이지,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자기모순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적 의의는 헌법과 국가 기능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이로써 국가 운영의 계속성을 확보하고 헌법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의 ‘대리인’이 아니라, 임시적이지만 ‘대통령 권한의 행사자’이다. 권한대행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직접 행사하며 그 헌법적 책임도 진다. 헌법(제71조)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한다’라고 할 뿐 권한행사의 한계는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따라서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이 가지는 헌법상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또 행사해야 한다. 헌법과 국가의 기능은 한시도 중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자는 전쟁 발발시 국군통수권을 행사해 전쟁을 지휘해야 하고, 외교관계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권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권한, 법률의 집행에 필요한 대통령령을 발하는 권한, 공무원을 임면하는 권한 등 모든 행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모두 국정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으로, 국가 기능의 계속성을 확보하는 행위다.둘째, 흔히 권한대행자는 ‘임시적 지위’라는 한계 때문에 권한 행사에 제약이 있다고 한다. 헌법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국정 공백을 메우거나 현상 유지의 한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호한 기준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국정 공백’이나 ‘현상 유지’에 관한 판단은 권한대행의 몫이다. 이런 판단까지 사법(司法)의 잣대로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영역에 맡길 것은 맡겨 두는 게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막는 길이다. 민주당과 국회의장은 이제 정치(政治) 복원에 집중해야 한다.셋째,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법관이나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동일한 성격의 권한행사다. 그런데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은 임명해도 되고, 대통령 몫의 재판관은 임명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임명 행위를 통해 비로소 재판관의 직위를 획득하는 것은 똑같다. 또한,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해서 임명하는 자리다. 대법관은 되고 재판관은 왜 안 되는가? 대통령 권한대행(황교안)이 대법원장 몫의 재판관(이선애)을 임명한 전례가 있다. 민주당이 유독 ‘대통령 몫의 재판관’만 시비를 거는 것은 자기모순이며 통 큰 정치가 아니다.
- 문화일보
- 2025-04-09 11:49
경제 희망 만들어낼 후보를 대망한다[포럼] 길고 길었던 탄핵 정국이 끝나면서 가장 큰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후련하다. 그뿐만 아니라, 길을 걸으며 노랗게 핀 개나리와 만개한 벚꽃을 보며 희망찬 봄의 기운을 느끼는 요즘이다.그런데 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현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지난주에 미국은 우리나라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도 조만간 품목별 관세율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25%를 넘어서면 반도체 수출에 추가 관세를 물어야 한다. 2024년 대미 수출액이 1278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대미 무역수지 흑자도 557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로 대미 수출이 13% 이상 감소할 것으로 하나은행은 추정했으며, BK경제연구소도 12.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총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20%나 되는 우리 경제에서 미국 상호관세의 영향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할 수 있다.대미 수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에 그대로 연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비관적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즉,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올해 큰 폭의 관세를 부과하고, 이후에도 고관세를 유지하는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 성장률이 1.4%를 기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의 보편·상호 관세와 각국의 대응 정도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해외 주요 투자은행이 앞다퉈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가운데 JP모건은 8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7%로 일주일 만에 0.2%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우리나라의 경기동행지수는 줄곧 내리막을 걸어왔는데 당장 미래는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우리 경제의 앞날이 풍전등화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기에 이번 주를 새로운 희망의 한 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합력해야 한다. 이제부터 진정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시간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협상의 카드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통상 협상 경험이 풍부한 주미대사 출신의 한덕수 권한대행이 8일 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분가량 통화한 것은 관세 협상을 위한 출발점이다. 국가의 리더십이 바로 서야 국민도 국가를 믿고 따라갈 수 있다. 6월 3일 대선일까지는 여당도 야당도 없는 만큼 국회 역시 대행 체제를 흔들어선 안 된다.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대한 정치적인 공세를 멈추고 경제살리기에 집중해 수권(受權)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힘도 대통령 탄핵의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계엄 이후 내수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들고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번 대선은 이념의 선거가 돼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은 소모적인 정쟁을 뛰어넘어 과연 우리 경제의 앞날에 희망을 전해줄 후보가 누구인지 차분하게 평가할 것이다. 아무쪼록 라인강의 기적을 뛰어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민족의 기상이 이번에도 발휘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 문화일보
- 2025-04-09 11:49
관세 대응 正道와 ‘고마운 바보’ 우려[포럼] 봄은 왔지만, 마음은 어둡고 시리다. 만우절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날리면서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고 했다. 예고된 일이긴 했지만, 그 내용이 터무니없어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관세를 카드로 세계 경제와 한판 도박을 벌여 보겠다는 그의 정책이 틀렸다는 근거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 이미 미국 시장에서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일방 조치에 대한 각국의 반응을 보면 그 나라의 국력, 국제적 위상, 품격 등이 녹아 있다. 미국의 주적(主敵)으로 등장한 중국은 제쳐 놓고 우방들 반응을 보면, 즉각적 보복 예고 같은 강경 자세를 보인 나라에서부터 미지근한 유감을 표명한 나라 등 다양하다.이 경우, 우리가 곧잘 관찰하는 일본은 바로 지난 3일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 “매우 유감. 일본 제외되도록 강력히 요청하고 질기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의 침묵이다. 물론 미측 발표 다음 날인 4일은 모든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 결정이 예정된 데다 전대미문의 산불 피해 등으로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은 된다. 이어서 주말이 왔고, 이제 와서 입장을 내기엔 이미 늦었다.트럼프 집권 전부터 우리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다 보니 무게 있는 대응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통상 당국이 발품을 팔아 갖은 논리로 설득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알려진 우리 통상 당국의 대미 메시지는 최소한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해 달라는 매우 얌전한 요청이었다.그런데 정작 발표된 내용을 보면, 군사동맹인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도 무시한 채 25%의 상호관세를 때렸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미국과 FTA가 없는 유럽연합(EU)이나 일본보다도 높은 것이다. 한미 FTA가 발효된 지난 15년간 우리는 대미 관세를 약속한 대로 착실히 내렸고,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협정 내용을 두 번이나 고쳤다. 팔지만 말고 투자를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응해 2023년에는 한국이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 제1위 국가가 됐다. 투자를 하면 혜택이 있을 것이라던 트럼프의 언급도 빈말이 됐다.국내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타결하고 지켜온 한미 FTA가 경제긴급권을 발동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국에는 휴지가 된 데 반해, 우리나라는 관련법에 따른 대항조치(FTA관세법 제26조)를 취하지 않는 이상 협정 내용을 계속 지켜야 하는 불합리하고 불편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 국내법에도, 협정문에도 체약국 간에 협정의 이행을 두고 이견이 있을 경우 상호 협의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미국은 당연히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당한 예외 조치임을 강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협의 자체가 배제되는 건 아니다. 미국 또한 상대국과의 협상을 예견하고 있다. 미국의 초치(招致)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협의를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고, 냉정하고 끈질기게 협상할 수 있는 길을 열기 바란다. 가만히 있으면 ‘고마운 바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 문화일보
- 2025-04-08 11:39
중도층 내치는 보수 정치의 자중지란[포럼]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마치 이미 집권한 정당 같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대선일 확정 공표를 압박하거나, 알박기 인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런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 상황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여기에 국민의힘마저 민주당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민주당은 이번 대선이 진영 대결 구도로 흐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제19대 대선의 경험 때문이다. 2017년 3월 5주 차 한국갤럽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거의 3배 앞섰고,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은 4%에 불과했다. 그런데 대선 결과는 여론조사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진보 진영 후보들의 득표율 합계가 중도·보수 진영 후보들의 득표율 합계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선이 진영 대결 구도로 흘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이번 대선도 진영 대결 구도로 흐르게 된다면,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니다. 지난 4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 4월 1∼3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 대상,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응답자의 주관적 이념 성향은 ‘보수적’ 32%, ‘중도적 및 성향 유보’ 43%, ‘진보적’ 25%로 나타났다.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의 이념 성향 분포는 진보가 우위였는데, 대선에서는 중도·보수 진영 후보가 진보 진영 후보보다 더 많이 득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이런 이념 구도는 민주당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번 대선 구도를 ‘내란 옹호 세력’ 대 ‘민주주의 수호 세력’의 대결 구도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런 구도가 형성된다면 민주당은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민주당의 이러한 전략에 보조를 맞추듯이,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탄핵 직후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는 주장이 보도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더욱 강화해주려 안달하는 셈이 된다. 헌재는 탄핵 선고에서 내란죄와 관련된 주요 사안 상당수를 인정한 상황이기에, 이러한 입장은 민주당의 선거 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모든 선거에서 중도층을 외면하면 승리할 수 없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지난 1월 22, 23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1514명을 대상으로 한 웹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2.52%P)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의 46.4%가 중도층이었다. 이처럼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도층이, ‘윤 전 대통령과 함께하는 국민의힘’을 과연 어떤 시선으로 볼지 국민의힘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배신’이라는 단어와 윤 전 대통령이 마치 보수의 투사라는 식의 언급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의 논리적 부정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 문화일보
- 2025-04-08 11:38
6·3 대선의 핵심 화두는 관용과 비전[포럼]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겨졌다. 12·3 계엄에 따른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111일 동안 이어진 찬탄과 반탄 정국의 극한 갈등은 헌법재판소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로 마침표를 찍었다. 기각을 기다렸던 사람들도 ‘그러게, 왜 계엄을 했어?’라며 수긍하는 분위기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진 않았지만,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로 헌재가 혼란한 정국에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이제 윤 전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책무는 명확한 승복 선언이다. 변호인단이 헌재 결정을 하나하나 비판한 논리에 대해,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게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아직도 거리에서 헌재 판결에 대한 찬반 시위로 과거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다.역사책의 새로운 장(章)을 쓸 차례다.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큰 공으로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졌다.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1929년 대공황 같은 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고, 유럽연합(EU) 특히 독일의 재무장은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다극체제로 이동하고, 트럼프가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를 부정함으로써 1945년 이후 축적된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가 없었더라도 이러한 외부 충격은 한반도를 덮쳤을 것이다. 이미 내려진 대통령 탄핵은 어쩔 수 없으니,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온 국민의 저력을 발휘할 때다. 복잡한 대내외 상황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그만큼 위기 극복은 빨라질 수 있다.더는 소모적인 내부 갈등의 회오리에 휘말리지 말고,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 공동체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공동체의 복원은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생각의 차이는 인정하되,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공공적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상대를 악마화하며 분노와 혐오로 치닫는 것은 모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전쟁이 아닌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축제가 돼야 한다. 6월 3일로 잠정 확정된 대선이 상대를 물어뜯는 전쟁터가 돼선 안 된다. 선거도 급한데, 개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숙성과 축적의 시간 없이 압축 선진국이 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만 옳다며 상대를 ‘계몽’하려는 사고방식이다. 둘 다 옳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프랑스의 볼테르는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가톨릭교도들의 광기를 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톨레랑스’(관용)라는 가치를 창안했다. 너도 한 표, 나도 한 표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고 선거를 치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혐오증을 고치지 못하면 새 정부가 들어서도 갈등은 반복될 뿐이다.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직 생각의 크기와 관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의 품격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봄날 고아한 목련꽃같이 우아하고 넉넉한 마음을 키워야 할 때다.
- 문화일보
- 2025-04-07 11:48
‘다수의 폭정’ 길 넓혀준 위험한 결정[포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존중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의 논증은 많은 법리적인 문제점이 있다.국가긴급권 행사 여부는 그 주체인 대통령만이 판단할 수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다. 따라서 사법부는 그에 대한 적법성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 다만, 극히 예외적으로 심판해야 하는 경우는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긴급권 행사의 원인·과정·결과를 종합적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헌법학계의 정설이다. 대통령이 국가긴급권 행사로 처벌·파면된 사례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과 결과를 무시하고 과정만 부각해서 위법한 증거를 기초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세계 대통령 탄핵 심판사에 부끄러운 선례를 남겼다.헌재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갖는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무시했다. 적법 요건의 판단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철저히 외면했다. 소추 사유의 철회·변경은 소추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형소법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소추의결서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을 허용했다. 내란죄를 철회했어도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논리도 견강부회 주장이다. 내란죄로 소추하는 것과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하다고 소추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란과 직권남용은 그 구성요건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직권남용은 재직 중 소추의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탄핵소추가 적법하다는 결정은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이다.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한 증거는, 모두 헌재법을 어기고 수집한 수사기록이며 그 성립의 진실성이 의심되는 가필된 메모와 오염된 증언이다. 특히, 메모는 이번 탄핵소추를 촉진한 핵심 증거인데도 피소추인 측의 필적 감정 요구를 헌재는 즉시 기각했다. 의심되는 증거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라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법의 증거법칙을 어겼다.그리고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판 등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는 황당하다. 국회는 탄핵소추 기관이지 탄핵 대상이 아니다. 국회의 폭거로 인한 국정 마비를 정치적·제도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도 허구적이다.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거대 야당의 폭거를 막을 정치적·제도적 수단은 없다.위헌·위법성의 중대성 판단도 허구적인 논리다.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라고 훈시했지만, 그 자구책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헌재도 인정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어떻게 파면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인가. 헌재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고 다수의 힘으로 무엇이든 밀어붙이는 야당을 견제할 어떤 민주적인 방법이 있는가.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헌재가 오히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현실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참담한 심정이다.
- 문화일보
- 2025-04-07 11:48
이젠 강력한 경제 리더십 절실한 시간[포럼] 이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으로 여념 없던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끝남에 따라 강력한 경제 리더십이 절실한 시간이다.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제 무역 환경과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주목할 점은, 국가별로 상이한 관세율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부과는 유럽연합(EU·20%) 영국(10) 일본(24)보다 높은 수준이다. 베트남(46) 태국(36) 중국(34)보다는 낮지만, 많은 한국 기업이 이들 국가에 투자해 현지 생산한 후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점도 우리에겐 불리한 점이다.문제는, 이 관세율 수준이 현재 우리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를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액을 총수입액으로 나눈 값의 절반이라는 다소 자의적인 방식으로 관세율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관세 부과의 목적이 무역적자 해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우리 정부가 결정 과정에 효과적인 대응과 사전 조율에 실패했을 가능성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가 한국산인데 이는 무역장벽 때문이라는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정부의 대응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수동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우리 측의 주도적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당장 수출 축소보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과 방위비 분담 재조정, 선박 유지·보수 협력 등이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투자를 통한 현지 생산 확대 방안이 있다. 물론 투자 기업의 현지 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돼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 근본적 정책 대응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우선, 장기적인 대응이다. 현재 미국의 관세 폭풍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은 우리를 포함한 많은 국가와 체결된 자유무역협정(FTA)의 근간을 흔드는 방향이다. 당사국들이 이를 수용하고만 있을 가능성은 작고, 전 세계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크다.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밸류체인을 무시한 관세 부과는 미국 내 생산비용 상승을 초래할 것이며, 동시에 국내물가 상승으로 소비자의 불만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 핵심은 ‘혁신 생태계’ 강화다. 단순히 연구개발비 지출이나 특허 건수 증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혁신이 실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최근 유력한 혁신 기업들이 미·일 등지로 이전하는 것도 국내의 제도적 제약을 반영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규제개혁, 강성 노조의 유연한 태도,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22년 만에 준공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제도 개선으로 실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리더십이다. 세계 무역 질서가 급변하고, 강대국 간 경제 패권 경쟁이 거세지는 만큼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선도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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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4 12:03
北억류 한국인 석방 권고와 정부 책무[포럼]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WGAD)은 지난달 13일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를 10여 년간 억류 중인 북한의 국제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정부와 국제사회는 세 선교사를 포함한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송환과 북한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WGAD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대륙별로 임명한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준사법기관’으로, 국제법에 따라 구금의 자의성을 판단한다. 사법부의 판결에 해당하는 WGAD의 ‘의견(opinion)’은 유럽인권재판소 등에서도 인용된다.앞서 WGAD는 중국에서 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 ‘통영의 딸’로 알려진 신숙자 씨와 두 딸, KAL기 납북사건 피해자 황원 씨, 탈북 후 중국에서 잡혀간 국군포로 최상수 씨와 그 아들 최성일 씨에 대해서도 자의적 구금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유럽에서 북한에 납치된 파독 광원(鑛員) 강중석 씨와 수도여고 고상문 씨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통일부 장관 직속 납북자대책팀과 주제네바 한국대표부의 도움으로 성사된 이번 WGAD 의견은 종교의 자유, 적법절차와 공정한 재판권 침해도 지적했다. 특히, 북한 김정은의 형사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가능성까지 경고한 것은 북한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다.김정욱 선교사 억류 4000일째이던 지난해 9월 20일 통일부 장관과 미 국무부 대변인, 최춘길 선교사 억류 10년이던 작년 12월 3일 국제종교신앙자유연합 의장이 석방 촉구 성명을 냈다. 유엔에서도 우리 외교관은 기조연설과 상호대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 등에서 세 선교사의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수많은 피해자 가운데서도 세 선교사는 석방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통상 납북자의 ‘자발적 체류’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세 선교사와 관련해 북한은 간첩죄로 ‘무기 로동(勞動) 교화형’에 처했다고 밝혔고, 비슷한 시기에 간첩으로 처벌된 미국과 캐나다 교포 선교사는 모두 ‘인도적 이유’로 석방됐다.향후 대북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면 세 선교사의 석방에 집중하고, 실현되면 이를 매개로 다른 사안도 다루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각국 종교자유 대사를 초대하는 국제회의를 열거나 유엔 북한인권결의에 세 선교사를 거명하는 것도 힘이 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기독교계와의 연대도 가능하다.다른 북한 인권 현안도 통일부와 외교부는 해마다 유엔총회와 인권이사회 결의안 논의가 시작되는 6, 12월에 북한인권 단체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오는 9월에 있을 유엔총회의 북한인권 고위급 전체회의 및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후속 보고서 확대상호대화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지난해 7월 이후 공석인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과 현지 대사가 일본인 피랍자 가족을 면담하듯이 한국인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가족을 면담하고, 한국을 포함한 5개 중견국의 협의체로 올해 우리가 의장국을 맡은 ‘믹타’(MITKA) 회담에서도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해결과 북한 인권 개선 촉구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 문화일보
- 2025-04-04 12:01
대주주 주식 사전증여, 권장할 일이다[포럼] 정부 주도로 설립됐다가 민영화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대개 창업자나 그 후손들이 개인 대주주로서 다수 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우리나라의 상속 및 증여 등에 대한 조세 부담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다. 특히, 개인 대주주 보유 주식의 상속·증여는 이른바 특수관계인 사이의 거래를 할증하는 법규에 따라 상당한 주식 가치가 희석되게 된다. 예를 들어, 개인 대주주가 1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10% 주식을 자녀 등에게 증여 또는 상속을 하면 20% 할증율이 붙어 120억 원의 가치를 넘겨준 것으로 간주돼 상속세율 50%를 적용할 경우 60억 원을 세금으로 국가에 내야 한다. 결국, 자녀들은 10%의 지분을 승계했어도 세금을 빼면 물려받는 지분의 가치는 4%(40억 원)로 줄어드는 셈이다.지금처럼 대주주 지분이 승계 과정에서 대규모로 희석되면 당장의 경영권은 물론 기업의 미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조세 환경이 이러니, 대주주 지분 승계가 예상되는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으면 ‘대주주 측이 승계비용을 낮추려고 고의로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종종 제기된다. 이는 국내 기업의 저평가 논란 해소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성장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따라서 현재 제도적 환경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미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보유 지분의 증여 등 대주주의 사전 승계 조기 이행으로 대주주와 소액주주 등 각 투자자 간에 장래 기업 가치 제고에 대한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지난 3월 ㈜한화의 최대주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세 아들에게 ㈜한화 보통주식 일부를 오는 30일 자로 증여할 예정임을 공시했다.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의 세금 등 대주주들의 부담을 회피 내지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면 김 회장과 세 아들이 적어도 주식 증여·수증이라는 가장 원칙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최근 한화그룹 계열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지분 취득 및 유상증자 등과 관련해 논란 중인 가운데, 김 회장이 보유 주식 증여 공시를 함으로써 오해의 소지가 줄었다. 특히, 한화그룹 계열회사들의 최근 경영행위가 대주주의 지분 승계 및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논란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대주주 지분의 증여나 상속 등과 관련, 세금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해 편법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번 공시는 이런 부정적 현상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자본시장법상 대주주는 주식 증여를 사전 예고하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를 통해 다른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증여 계획을 알려야 한다. 또, 실제 증여가 실행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의 주가를 반영해 산정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는 투자자 보호와 조세 정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고, 대주주와 소액주주 등 투자자 사이에서 미래 기업 가치 및 주주 가치의 성장에 대한 이해관계를 사전에 일치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적극 권장돼야 한다. 한화그룹의 선택은 경영권 승계가 임박한 다른 그룹도 참고할 만하다.
- 문화일보
- 2025-04-03 11:51
尹 탄핵심판 뒤 본격화할 정치적 내전[포럼] 위기는 기회다. 진부하나 쉬운 말은 아니다. 정말 위기를 기회로 살리려면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 내일(4월 4일) 헌법재판소가 내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론은 한국 정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현 위기의 절정일 것이다. 이 위기를 맞아 여야 정치권 전체가 처절히 반성하고 변하려 한다면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에서 이런 낙관론은 공허할 뿐이다.여야 양쪽은 내전에 임하는 듯한 호전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지자들은 당장 거리로 뛰쳐나갈 듯한 맹렬함을 예열하고 있다. 과연 헌재 판결에 승복하는 민주적 모습을 보일지조차 걱정스럽다. 오죽하면 판결 당일 폭력적인 시위를 우려해 서울 시내 한복판의 ‘진공상태’가 예고됐겠는가. 경찰은 갑호비상을 내려 헌재 앞 등 여러 곳에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중이다. 시내의 궁궐·박물관·미술관·문화회관 등이 휴관을 예고했고, 많은 초·중·고교도 휴업을 결정했다. 휴무로 문닫는 가게도 많아 영문 모르는 외국 관광객은 갑작스러운 어수선함에 당황하고 불안할 것이다.판결 당일의 혼란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미 양극화된 정치권이 더 극단으로 쏠리며 사회 전체를 대결로 몰아넣는 일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여야는 극단주의적 책략으로 상대를 거악으로 몰아세우며 내부 단합을 우선시했다. 온건 정치와 중간적 조화는 위선적 기회주의라고 매도한 결과 정치권에서 중도론자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이분법적 흑백 균열이 이번 헌재 판결 이후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탄핵 되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각하나 기각이 되면 상처투성이로 복귀한 대통령의 물 새는 통치로 정치권은 더 센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다. 여야는 각기 선동적 포퓰리즘 방식으로 지지층 유권자들을 자극·동원해 국민 다수가 전면전으로 치닫기 쉽다.최고위급 정치인들이 자신의 힘과 위상을 지키는 데는 양극적 대결이 유용할 수 있다. 특히, 헌재 심판이 불리하게 난 쪽은 흔쾌히 승복하기보단 각종 구실로 저항의 여지를 남겨 놓으려 할 수 있다. 전면적 불복이 아니어도 심판 절차상의 문제나 심판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며 조기 대선이나 국정 운영 과정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할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후 순순히 물러나 반대편에 주도권을 넘겼다고 결과론적으로 개탄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0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판을 흔들어 4년 뒤 정권을 되찾은 사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우리도…’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할지 모른다.이렇게 권력 지상주의에 물들어 극단주의적 책략으로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정치권에 일반 유권자가 장단을 맞춰선 곤란하다. 삼류 정치권에 유권자가 부화뇌동해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유권자는 냉철한 파수꾼으로서 감시·비판·견제해 정치권이 변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 결과든, 헌재 판결이든 그 결과를 승복하도록 여론이 압력을 가해야 한다. 정치권이 승복의 기본적 문화도 보이지 못한다면 개헌, 선거제도 개선, 의식 개혁 등을 논할 자격이 있겠는가. 이번 헌재 판결을 깨끗이 승복하고 그것을 계기로 반성하고 변하는 정치권이 돼야 한다.
- 문화일보
- 2025-04-03 11:51
절차 흠결로 더 중요해진 ‘법적 양심’[포럼] 지난해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탄핵 정국 속에서 드라마틱한 현대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졸속으로 심리절차를 진행하면서 조속한 선고를 암시했었다. 그런데 탄핵소추된 지 111일, 변론 종결 이후 38일 만인 오는 4일에야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웠다.이번 탄핵심판은 과거와 달리 탄핵소추 때부터 논란이 있었고, 청구된 이후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면서 청구서의 주요 부분 변경에 따른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제로 각하 논란이 있었다. 이렇게 헌재는 내란죄 철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포고령 위헌성 여부, 국회 봉쇄 및 장악 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정치인과 법조인의 체포 시도 등을 쟁점으로 재판을 진행했다.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위헌·위법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피청구인의 직접 신문을 막고 증인들의 신문 시간도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되는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했고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 그다음, 형사재판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는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고, 고소당한 사람의 조서는 송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을 위반했다.헌법재판도 사법적 기능을 행사하는 재판이며, 탄핵심판도 헌법재판으로 법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재판이다. 헌법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재판은 신속하고 공정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은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면서 특히 선고는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 재판이든 헌법재판이든 재판은 공정성이 핵심이다.헌법은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으로 재판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양심이란 개인의 인생관·세계관 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법적인 양심을 말한다. 이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을 사적 양심이 아닌 법리적으로 판단하고 따르는 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관도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적 양심으로 재판해야 한다.헌법은 흔히 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규범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헌법은 법이지 정치가 아니다. 헌법에 정치적 성격이 있다고 해도 헌법재판은 사법적 재판이지 정치적 재판이 아니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재판관도 인간인 이상 자신의 인생관·철학 등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재판은 공정성이 생명이며, 탄핵심판은 헌법적 정당성에 근거한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탄핵심판의 선고일이 공지되면서 그 결과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법리적으로 명백한 것은, 계엄선포권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는 점이다. 비상계엄의 발동 요건인 국가비상사태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헌법적 판단에 달렸다. 탄핵심판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 법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에서 국가비상사태가 현존하는지, 비상계엄으로 국가권력이 배제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적극적으로 밝혔어야 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적 양심으로 재판해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문화일보
- 2025-04-02 11:35
산불은 복합 재난, 종합대책 절실하다[포럼] 지난 한 주 영남지역의 대형산불로 인해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번 산불의 피해 면적은 4만7950㏊이며, 31명이 숨지고 44명이 부상했다. 또, 주택과 농업시설물 6400여 곳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끔찍하다.산불 진화는 산림보호법에 근거해 피해 규모에 따라 시장·군수에서 시·도지사, 산림청장 그리고 국무총리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휘권자로 산불 진화를 책임지게 된다. 그리고 면적별로 지휘권자는 산림·소방·경찰·군·문화재·기상 등 유관 기관을 통합해 총괄 지휘하며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특히, 최근 산불이 자연재해를 넘어 인명·재산 등의 피해를 일으키는 복합 사회재난이 되면 산림 당국을 넘어 모든 유관 기관이 동참한다. 산불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산불 피해지역의 지형과 산림 구조, 기상 여건 등을 종합 분석해 진화에 필요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진화에 역량을 결집해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막는 예방 활동과 진화 후 복구 방향도 함께 논의한다. 산불에 대한 예방·진화·복구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전임 산림청장으로서 대형산불 현장을 지휘해 본 소회는 다음과 같다.먼저, 이번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겨울철 건조했던 지역에 기온이 급상승하고 경험하기 힘든 강풍까지 더해진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산불 위협 여건이 악화한 것이다. 특히, 피해지역에 산림이 울창해져 20년 전과 비교해 나무밀도가 3배 이상 늘면서 불탈 연료가 급증한 것도 화마(火魔)를 키운 원인이 됐다. 지역의 특성상 소나무 등 침엽수의 비중이 높아 산불 피해가 커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숲이 울창해지면서 낙엽을 비롯한 탈 것이 늘어난 것이 산불을 확산시킨 근본적인 원인이다. 숲을 자연과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산림재난에 대비한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범정부 차원의 산불 진화 자원도 확충해야 한다. 산악 지형인 우리나라의 숲은 헬기와 인력을 동원한 공중과 지상 진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초동 진화의 시작은 헬기가 절대적이다. 산불 진화에 투입할 수 있는 헬기는 민관군 합쳐 200여 대이지만, 산불 진화의 주력인 물의 담수량이 많은 대형 헬기가 부족하다. 동일 담수량을 가진 중소 헬기 여러 대보다 대형 헬기 한 대의 효과가 더 크다. 대형 헬기 도입에 재정 부담이 크겠지만, 이번에 확인했듯이 대형 헬기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또한, 지상진화를 책임질 전문인력을 늘리고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산림청 소속으로 공무원인 공중진화대 104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산불 진화 인력이 임시직이다. 연중 산불 발생에 대비한 산림재난 전문인력의 상시 운용이 필요하다.끝으로, 진화 인력의 이동에 필수적인 임도(林道)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산림청장 취임 초에 산불 진화를 직접 지휘하면서 임도의 유무가 지휘관의 지상진화 전략·전술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체험했다. 임도가 없는 산림은 공중진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강풍이 불어 산림 헬기를 투입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진화 인력의 이동과 최후 방어선 구축을 위해 임도는 꼭 필요하다. 산불의 특수성을 반영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마련을 기대해 본다.
- 문화일보
- 2025-04-02 11:34
野 헌재법 개정안 위헌, 再탄핵은 위법[포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거대 야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국회가 그 후 선출한 헌법재판관 3인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소추됐으나, 지난달 24일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됐다. 기각 이유는 국회에서 자격 있는 후보자를 법절차에 따라 선출한 이상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이를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은 삼권의 견제와 균형 및 헌법재판소의 중립을 보장하려는 헌법 취지에 위배되지만,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위헌·위법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런데 한 대행이 업무에 복귀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의원 72명은 국회가 선출한 위 후보 중 아직 임명되지 못한 마은혁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한 대행을 다시 탄핵소추하고 후순위 대행 국무위원들도 무조건 줄탄핵하겠다고 천명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이에 호응해 한 대행이 그 임명을 4월 1일까지 하지 않으면 야당은 중대 결심을 하겠노라고 위협한다.애초에 국회가 탄핵심판 청구를 하고 나서 그 심판을 맡는 재판관도 국회가 선출함은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 특히, 거야가 거의 일방적으로 대통령 탄핵소추를 했으면서 그 재판관도 같은 야당이 추천하는 친야 성향 후보자를 선출해 임명을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함은 물론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또한, 탄핵심판 결정에도 민사소송법이 준용돼 기판력이 인정되는데, 한 대행에 대한 재탄핵은 물론 그 탄핵으로 권한대행직을 순차 승계하는 국무위원들에 대해 줄탄핵을 하는 것도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에 저촉돼 허용될 수 없고 심판 각하 사유가 된다. 한 대행에 대한 탄핵기각 결정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와 법률관계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도 민주당이 거대 야당임을 기화로 오로지 한 대행이나 그 순차 대행 국무위원들의 직무정지 효과만 노리고 줄줄이 탄핵소추를 함으로써 국정의 중책을 맡고 있는 국무회의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이는 국회의원이 그 직권을 부여한 목적에 위배해 탄핵소추권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므로 직권남용죄가 될 수도 있다.거야의 입법권 남용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폭주한다. 민주당 측은 국회 선출 또는 대법원장 지명 재판관은 대통령이 7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임명된 것으로 간주하며, 재판관의 임기 만료나 정년 후에도 후임자 임명 때까지는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 회부했다. 전자는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재판관 임명권을 법률로 함부로 제한하는 것이고, 후자는 헌법으로 제한된 재판관 임기 6년을 법률로 연장할 수 있게 돼 위헌 입법이다.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자는 국회 선출 재판관 및 대법원장 지명 재판관 각 3명을 제외하고는 재판관 임명권이 없도록 하는 법안을 법사위에 회부해 입법예고 중이다. 이는 헌법재판소 구성에 정부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삼권의 견제와 균형 및 헌법재판소의 중립을 보장하려는 헌법 취지에 위배된다. 법치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 문화일보
- 2025-04-01 11:40
북한군은 현대화, 국군은 훈련 부족[포럼] 2025년은 북한에 결실의 해이다. 북한은 2022년부터 러시아에 탄약 수출을 시작해 2023년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 후 노골적인 거래에 나섰다. 북한이 전시 비축탄까지 수출하면서 러시아를 지원하자, 러시아는 유엔 대북 제재 무력화와 북러 군사동맹으로 화답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를 점령하자 북한은 기어이 전쟁에 참전해, 초기 파병부대의 커다란 희생을 교훈 삼아 올 3월부터 승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올해 러시아는 북한의 노력과 희생을 착실히 보상할 것이다.올해는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모든 성과를 입증하는 해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가속해 전술핵탄두, 극초음속미사일, 핵어뢰, 미사일 잠수함 등을 차례로 선보였고,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공격적인 핵 태세까지 과시했다. 이러한 성과를 종합하고 8차 당대회의 목표를 달성했음을 과시해 내년의 9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북한이 올해 반드시 마무리할 과제이다.이제 북한은 핵개발을 마무리하면서 재래무기 현대화까지 추구한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초부터 꾸준히 전차·자주포·방사포 등 지상 장비는 물론 해군 함정까지 현대화하려고 했지만, 재원·자원과 핵심 기술의 부재로 실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북러 밀착 본격화로 러시아가 지원에 나서면서 북한군 현대화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북한은 과거 홀로 추진할 수 없었던 공군과 해군 분야에서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공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남포에서 4000t급 호위함과 함께 핵잠수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군에서는 최근 조기경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위함과 조기경보기에 장착될 고성능 레이더와 통제 장비, 잠수함용 원자력 추진 체계는 북한 홀로 개발이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북한군 현대화에 적극 협력해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지점이다.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군의 미래전 준비 태세이다. 북한군은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무려 4000여 명의 희생을 기록하면서 현대 전쟁을 몸소 체험했다. 지난 3월 공세에서 북한군은 러시아의 광케이블 자폭 드론 지원 아래 공세를 주도해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거점도시 수자를 점령하면서 이제 현대 드론전쟁에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부터 자폭 드론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북한은 단순히 러시아제 카피가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킨 자폭 드론들을 선보였다. 특히,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실전적 성능을 강화한 북한제 드론은 러시아에 수출되는 것은 물론 북한군의 주요 전투 장비로 보급돼 가성비 전쟁을 주도할 것이다. 북한군의 혁신과 진화가 눈앞에 있다.가장 혁신을 잘하는 이는 당장 혁신하지 않으면 죽는 자들이다. 북한은 그런 절박함으로 남의 전쟁에 참전하고 핵과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국방혁신 4.0과 유무인 복합전투라는 미래를 외치지만, 구호는 있으되 절실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면서 국군의 준비가 부족함을 보여줬다. 훈련을 실전처럼 절실히 준비하지 않으면 북한군에도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 문화일보
- 2025-04-01 11:39
마은혁 임명 겁박은 전체주의 신호탄[포럼] 헌법은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위배’로 명시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탄핵절차를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니라 규범적 심판절차로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탄핵제도의 목적이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법 위반을 이유로 하는’ 대통령의 파면임을 밝히고 있다”.(헌재 2004헌나1)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탄핵심판 취지를 망각하고, 헌재에 정치적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광화문에 천막 당사를 설치하고, 이재명 대표는 ‘심리적 내란과 물리적 내란’까지 언급했다. 이는 유사시 불복 투쟁을 선동하기 위한 야전 본부로 사용하고 당의 위기의식을 극대화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것이다.(양승함, 문화일보 2025. 3. 26.)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지난 28일 ‘긴급성명서’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재탄핵에 들어가겠다며, 모든 국무위원도 똑같이 탄핵하겠다고 한다. 이런 비정상적 행위는 헌재에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강요하는 것이고, 파면 정족수 6인을 확보하고자 마 후보 임명을 강행시키려는 것이다.국회 다수당이 탄핵소추를 넘어 탄핵심판에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다. 이미 29건 탄핵소추 발의, 9건의 탄핵심판 기각에 이은 노골적인 정치적 행태는 여소야대에서 국회와 대통령의 갈등관계의 통상적 범위를 넘어 전대미문의 입법독재 행태다. 민주당이 실제로 대통령과 행정부까지 장악한다면 헌재에 대한 압력에서 보듯이 사법부까지 통제하려 들 것이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는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이 작동되지 않고 전체주의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재판관은 독립하여 심판하며,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헌법재판소법 제4조, 제9조) 그런데 특정 정당의 정치적 강령에 우호적인 재판관 임명 강행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런 행태가 계속되면 헌재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을 지니지 못하고, 누구나 정치적 사건에서 특정 재판관의 결론을 예측할 수 있는, 결국 ‘또 다른 정치적 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마 후보 임명을 위해 국무위원 전원 탄핵소추를 하겠다는 행태는 ‘재판의 불공정성’을 스스로 조장한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만약 마 후보가 재판관으로 임명돼 변론갱신이 된다면, 결론이 정해진 재판관을 임명시키는 것 자체가 헌법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다.한 총리에 대한 같은 이유(재판관 미임명)의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법 제39조 일사부재리에 어긋나 헌재가 심판할 수도 없다. 이를 피하고자 다른 부적절한 이유까지 포함한다면 헌재가 신속히 소추권 남용 법리를 재설정해 각하해야 한다. 차제에 적법절차를 관철해 아무런 조사나 청문도 없이 탄핵소추부터 강행해 고위 공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국회의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국무위원 전원 탄핵은 특정 헌재 결정을 도출하려는 부당한 정치적 목적의 권력남용이며,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상 턱도 없는 ‘내란죄’ 프레임으로 선동하면서, 막상 그들이 진짜 내란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 문화일보
- 2025-03-31 11:33
‘개정 상법’ 거부권 당연한 3대 이유[포럼] 주식회사의 본질은 소유, 즉 주주와 경영의 분리다. 주주와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이사들이 회사의 경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되 개별 주주는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경영인에 의한 성과의 분배에만 참여할 뿐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지배적 주주가 회사 운영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소수 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니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자는 것이 최근 개정된 상법의 핵심 내용이다.그러나 이 개정 상법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치명적인 흠결이 있다.첫째, 현행 상법에 규정된 회사의 이익은 이미 주주의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다. 회사의 이익이 소수 주주에게만 이익이 될 뿐 다수 주주의 이익과 배치되는 경우는 이미 상법상의 회사 이익이 되지 않는다. 회사의 이익은 다수 주주의 이익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부 지배주주의 이익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므로 그대로 둬도 법적 하자가 없다. 개정 상법에 따라 주주의 이익에 충실한 이사의 행위가 오히려 다수 주주의 이익을 저해할 수도 있다.둘째, 주주의 이익이란 생각만큼 단순하고 명료한 개념이 아니다. 어떤 경영 사안을 놓고 주주의 이익은 다양하게 갈라지게 마련이어서 완전히 통일된 주주의 이익을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주주 간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 개정 상법은 회사의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셋째,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정이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 전략 수행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가 있다. 특히, 글로벌 리스크가 커지는 경영 환경에서 단기적인 주주 이익 확보에 치우치면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 유익한 경영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악의적인 소수 주주에 의한 의도적인 소송이나 경영 분쟁으로 인해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이 저해됨에 따라 다수 주주의 이익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개정 상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중복 상장하거나 핵심 계열사를 총수 회사와 헐값에 합병하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등 다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개정 상법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개정된 상법이 악의적으로 동원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탈출하는 국내외 투자자들을 돌려세울 첫걸음이 바로 개정 상법이라지만, 오히려 그 외국인 투자의 이탈을 촉진할 위험성도 매우 크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입법 목적과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짙다.개정 상법은 기업 경영 현실을 모르는 초보자들이 만든 위험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 8단체장 등 모든 기업 경영자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면 그 의견을 경청하는 게 정상이다. 기업합병이나 분할과 같이 명문화된 특별한 경우에 한해 주주 이익 보호의무를 명시하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훨씬 합리적으로 판단된다. 정부 기관 책임자가 찬성하더라도 개정 상법은 정부가 거부해야 할 입법임에 틀림없다.
- 문화일보
- 2025-03-31 11:32
동일성 상실한 ‘尹 탄핵’ 각하가 최선[포럼]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전부 무죄 판결한 것으로 인하여, 그 법원에 재직하던 당시 서울고법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모두 담당한 판사였던 입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우선, 이 판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특정 부지의 용도지역을 4단계 상향한 것이 ‘상향 안 하면 직무유기죄를 문제 삼겠다’는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이었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국정감사에서 답변한 것이 ‘사실공표’가 아니라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큰 잘못이다. 무엇보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시작한 이 대표의 답변을 ‘사실공표’가 아니라고 한 것부터 잘못이다. 또, 대법원 판례가 표현 내용이 증거에 의해 증명 가능하면 ‘사실’이지 ‘의견’이 아니라고 보는데, ‘상향’이 국토부의 협박 때문이었는지 자의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협박 여부에 따라 증명 가능하므로 이 대표의 답변은 ‘사실공표’다. 그리고 ‘사실공표’ 여부는 발언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지, ‘직무유기죄’와 ‘협박’ 등으로 한 단어씩 분리해서 할 게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이번 판결은 이 대표의 답변을 사실공표로 보더라도 허위로 볼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도 큰 잘못이다.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서들은 혁신도시법 제43조 6항의 의무조항에 의한 요구가 아니었고,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 ‘상향’할 수 있으므로 협조해 달라는 취지에 불과했다. ‘직무유기’ ‘협박’이라는 느낌의 말이 전혀 없었다. 국토부와 성남시 20여 명의 증언도 같은 취지였다. 그런데도 이 대표의 ‘상향’은 국토부의 법률상 요구와 직무유기죄를 문제 삼겠다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답변을 허위가 아니라고 본 것은 잘못이다.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이 이 대표와의 특수한 친분을 내세워 상향해 준다며 위 부지의 개발사업자로부터 74억여 원을 알선수재한 것으로 징역 5년의 대법원 판결을 받은 것도 이 대표의 ‘자의 상향’을 뒷받침한다.셋째, 위 판결은 그 밖에도 공직선거법 입법 취지의 몰각 등 여러 가지로 법리와 상식과 정의에 배치된다.한편, 위 재판 이상으로 중요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과 헌재가 진영 논리대로가 아니라, 법리대로 재판하고 사법 절차의 목적인 형평과 정의에 맞게 결정하면 국민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국회가 대통령의 내란죄를 핵심으로 삼아 수십 번 강조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놓고는 국회 대리인이 헌재의 심리 대상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이상 소추 사실의 동일성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헌재는 탄핵심판 청구를 부적법 각하해야 한다. 각하를 면하려면 내란죄를 제외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새로 가결하면 된다.소추 사실의 동일성 상실은 전적으로 국회의 책임이지 헌법재판관의 책임이 아니므로 각하 의견을 낸 재판관을 어느 진영이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탄핵을 각하하면, 기각한 경우와 달라서 국회가 새로 의결해 다시 탄핵소추할 수 있다. 따라서 각하는 기각보다 ‘반탄’ 측에 조금 불리하고, ‘찬탄’ 측에는 조금 유리한 절충적인 결론이므로 심리적·물리적 내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일보
- 2025-03-28 11:46
美의 농산물 비관세 장벽 역이용할 때[포럼] 관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실천에 ‘조자룡의 헌 창’이 됐다. 취임 즉시 모든 수입품을 상대해 ‘보편관세’, 중국·멕시코·캐나다 등 특정 국가를 겨냥해 ‘국별 관세’,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수입품을 목표해 ‘품목 관세’를 띄웠다. 피해국 반발로 시행에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인다.이제 ‘상호관세’를 들고나왔다. 표적 국가와 무역수지 균형 맞추기 시도이다. 표적국을 ‘더티(Dirty) 15’라 부르고 오는 4월 3일부터 발효된다. 미국은 무역 상대국의 15% 정도가 부당 관세나 불공정 제도로 미 제품 수입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한국을 높은 관세 국가라고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농식품 수입 위생검역(SPS) 규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 통상 장관도 여기저기서 같은 주장을 한다. 미국의 SPS 지적 사항들 중 소고기 관련 사항에 가장 주목한다. 소고기는 2008년 개방 후 ‘30개월령 미만’으로만 수입하는 것을 지적한다. 미국 축산·육가공 업계가 트럼프의 강한 지지 세력임을 고려할 때 우리의 치밀한 준비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우선, ‘30개월령 미만’으로도 한국은 미국의 최대 소고기 수출시장이 됐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오랫동안 일본이 미국 소고기 최대 수입국이었다. 그런데 2021년 이래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해 지난해 수입은 22억 달러를 넘었다. 30개월령 이상 된 소고기와 소해면상뇌증(BSE)의 연관성에 한국 소비자는 아직 트라우마를 가진다. 그래서 월령 기준 변경은 자칫 미국 소고기 전체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소비자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면 미국에는 소탐대실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특히, 미국 축산·육가공 업계를 상대해야 한다.한편, SPS 등 비관세 문제는 우리도 미국에 제기해 농식품 수출 장벽을 낮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필자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우리나라는 24개국으로부터 991건의 통관 문제를 겪었다. 그중 305건이 미국이었고 그 가운데 302건은 통관 거부, 3건은 리콜됐다. 물론 다른 나라보다 미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니 통관 문제가 잦을 수 있지만, SPS 같은 비관세 조치가 우리 농식품의 대미 수출에 장벽임은 분명하다. 이참에 미국 비관세 장벽에 막혀 수출이 어려웠던 품목과 원인을 찾아 대응하는 것도 ‘더티 15’에 맞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실리를 좇는 트럼프에게는 실리를 주고받는 전략이 최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달 초, 중국 사회과학원을 방문해 농업통상팀을 만났다. 트럼프가 연일 중국에 관세 폭탄을 선언하던 때다. 생각보다 조금 느긋해 보이는 중국팀이었다. 짧은 설명에 수긍 가는 점도 있었다. 이전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경제 외에 인권, 대만 문제 등 ‘가치’ 충돌이 겹쳐 전선이 복잡했는데, 트럼프 행정부와는 경제 실리가 우선이라 전선이 훨씬 단순해졌다고 했다. 아울러 트럼프 1기 이래 농식품 분야는 중남미로 무역국 다변화, 내수 시장 확대 등으로 미국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는 점도 강조했다.트럼프의 첫째 몰매 대상인 중국에서 타산지석을 본다. 소고기 등 농식품 무역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얻는 실리를 철저히 인식시키고 거기에 대응해 우리도 실리를 찾는 통상 협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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